점 찍고 돌아온 아내의 유혹, 미아사거리역.
오늘은 2023.12.8.
이렇게 쉽게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 본명을 썼을 텐데.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내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당시엔 호적을 하려면 인편을 통해 본적지에 신고했어야 했나 본데 그곳 담당자의 실수로 마지막 글자의 한자 점 네 개를 빠뜨리면서 전혀 다른 이름이 된 걸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발견했다.
그러니 중학교 졸업장의 이름과 그 이후의 이름이 다르다. 그 일로 많이 예민해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개명'이란 복잡스러운 절차에 집안 그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그렇게 본명 아닌 본명이 되어 살았다.
절차가 간소해졌는지 최근 주위에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 종종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사주팔자 이런 걸 보진 않을 텐데 벌써 두 번이나 그리고 이번엔 집안 식구들 전체가 바꾼 사람도 있다. 회사에도 년에 한 둘씩 개명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대개는 이전 이름이 전원일기에 나올 법한 것이어서 이해는 가는데 문제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 던 친구들을 갑자기 불러야 할 때 자꾸 전원일기 때 이름이 튀어나온다.
애써 점찍고 돌아와 '아내의 유혹' 민소희로 보이고 싶은데 구은재로 아는 척을 하면 판이 깨지는 법이다.
줄 다시 긋는다고 모두 수박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내심 결심이 컸을 것을 생각하면 뭔가 바뀌기는 바뀌었을 것이다. 띨띨한 변우민이 되어 속아주고 바뀐 이름으로 한번 더 불러주며 뭔가 업그레이드된 대우를 해 줘야 맛이 산다.

4호선 미아삼거리역이 오래전에 미아'사'거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길음동과 종암동 쪽에서 올라와서 수유동 방면으로 합쳐지는 고가도로 때문에 미아삼거리가 되었고 그 고가가 없어지면서 이후로 사거리가 된 것인데, 태어나고 자라고 어린/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 늘 그 어간인 탓에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한 것인지 잊은 것인지 내게는 여전히 미아삼거리이고 입에도 '미삼'이 짝짝 붙는데 오늘 우연히 본 지하철 노선표에는 생경하게 '미아사거리'역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발이 더뎌 허름하고 좁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지역이지만 고향이라 부를만한 곳이다.
국민학교 단체관람의 성지 대지극장과 내 상견례가 있었던 빅토리아호텔, 대학 휴학시기 아침마다 '푸시맨' 알바를 했던 바로 그 역이 미아삼거리역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점 하나를 찍고 나타나 '사거리'임을 주장한다.
역명이 바뀐 지 10년이 넘었다는데 이제 와서 은재로 부른다면 민소희의 노력을 너무 무시하는 거겠지?
지금이라도 띨띨한 변우민이 되어야겠다.
미아삼거리의 '아내의 유혹'은 십년 넘게 계속 중이다.
사족 - '삼'거리가 '사'거리가 된 것이니 점을 하나 빼고 온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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