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7.2] 새로운 체험, Ice Bar
이러다 홍대 죽돌이(?)가 되겠다.
비보이 공연을 본 다음 날, 회사 신입사원들 몇 명과 정기모임이 있었는데 장소를 담당하기로 한 친구가 또 홍대에서 만나잔다. 홍대 앞이 이런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6월의 마지막 금요일을 소비하기 위해 분주한 젊은이들로 통행이 어려운 이 거리가 어느 때부터 이러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태국요리 전문점에서 식사를 겨우 마치고-겨우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태국현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무성의한 재료와 역한 뒷 맛이 참기 어려웠다. 오늘 처음 출근했다는 종업원들의 어설픈 서빙이 한몫을 더했고,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이 괴로운 이 업소의 이름을 공개하려다 참는다-오늘의 메인이벤트 장소인 Ice Bar로 자리를 옮겼다.
Ice Bar? 정확한 영어식 표현이 아닌 콩글리쉬이리라 무슨 하드 이름 같기도 한 이곳은 냉동창고 스타일로 4계절 내 내 에스키모의 기분으로 가벼운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신세대의 공간이다.
오늘 찾아간 곳은 'Sub zero'라는 홍대의 대표적인 Ice Bar이다.
입장료 15,000원을 내면 방한복-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뒤집어쓰는 판초 스타일이다-과 장갑을 지급받는다. 스타킹 차림의 여자들은 발목까지 오는 털부츠로 갈아 신고 냉동창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육면체의 얼음 덩어리에 구멍을 내어 보드카 베이스의 저알콜 칵테일 한 잔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이 얼음잔은 설거지를 어찌할까? 궁금하다.
온통 사면이 얼음으로 된 그리 크지 않는 공간에 양 쪽의 냉각기에서는 연신 냉기를 품어내고 있다. 푸른빛의 조명 아래에서 영하 5도를 느끼며 잠시 있다 보면 돈 내고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을 체험했다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쏠쏠하다.
문제는 소품으로 놓여있는 가면이나 가발을 뒤집어쓰고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나면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 종업원 말로는 보통 20~30분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나간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춥기도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정확히 1시간을 버텼고, 그 사이에 들어왔던 다른 한 팀을 물리쳤다^^
그런 면에서 열몇 시간씩을 그 안에서 버텼다는 사람들의 사진과 그 안에서 용변을 해결한 소변통들-물론 꽁꽁 얼어있고 외부에는 싸인이 되어 있다. '영광의 눈물'이라는 거창한 제목과 함께ㅋㅋ-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는 데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안에서의 생각 : 한 번은 모르겠는데 두 번 올 곳은 아니다. (춥고, 재미없고, 뭐 먹을 걸 주는 것도 약하고...)
밖으로 나오면서의 생각 : 한 여름에 다시 올만 한걸! (나오자마자 습한 홍대의 열기를 바로 느낄 수 있다)
덥고, 마땅히 할 일 없는 홍대의 방랑자라면 한 번 들러보자.
그냥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는 수준에선 다녀올만하다. 별 세 개 반!
[글 더하기]
오늘은 2024.1.23.
아직 이런 냉동창고를 경험할 수 있는 이색 카페? 바? 가 여전히 그곳에 운영 중일까?
아마 망했으리라.
오늘 아침 출근길 차량에 찍힌 외기온도가 영하 13도였다. 여느 냉동실 못지않은 기온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더 낮을 텐데 이런 식으로 여름 겨울이 극단적인 나라에서 어느 한쪽의 계절에 기댄 시설물은 망해먹기 딱 좋다. 가만히 있어도 북극날씨인데 굳이 돈 내고 미지근한(?) 얼음 창고로 찾아들어갈 돌아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한철장사란 말도 여전히 존재한다. 스키장 처럼 한철만 장사해도 나머지 계절을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땡길 수 있거나 다른 포트폴리오가 마련된다면 가능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한가? 한 가지만으론 뭔가 아쉬운 세상이다.
장기판에서 하나의 수로 두 개의 "장군이요~" 를 부르는 양수겸장이 파워풀한 법이고 손흥민이 뭐가 아쉬워 양발잡이가 되는 편을 택했겠는가?
어른들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유일하게 배운 한 가지 기술 때문에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이 급변하고 어제의 기술이 오늘은 구태가 되는 요즘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두루두루 얕은 지식의 제너럴리스트가 오래 살 지도 모르겠다.
주식만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다.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