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9.3] 이제 가을인가? 남이섬 주말여행
사실 여행이라 부르기엔 낯 부끄러운 말이다.
주말 한 낮에 출발해서 점심 먹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인 짧은 나들이니 말이다.
지난 토요일. 수업을 마친 딸아이를 픽업해 찾아간 남이섬은 꽤나 자주 오는 곳이다.
계절마다 한 번은 오는 셈이니 이제는 발에 닿는 한 구석의 느낌도 낯설지 않다. 그만큼 딱히 변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태어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포장하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섬의 풍광이 나이 먹어감을 천천히 즐길 수 있어서 남이섬이 좋다.
섬과의 사이를 오가며 배 위에서 맡을 수 있는 선박 디젤엔진의 역한 냄새도 묘한 향수로 다가온다. - 진정 변태인가?...ㅠ.ㅠ
지난 주말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남이섬을 찾았다.
아스팔트의 이글거림이 잦아드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밖에 없는 회색인이라면 누구라도 두어 시간을 투자하면 경춘가도를 따라 늘어선 초가을을 만나고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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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2.8.
2009년 겨울. 본사 사옥을 종로타워에서 삼성본관으로 이전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폐유리들을 조형물로 만드는 등 당시 남이섬과의 협업이 있었는데 바로 그 어간에 뻔질나게 남이섬을 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길을 끊었다.
너무 자주가서 지겨워진 이유가 제일 컸지만 남이섬이 친일파 후손의 재산이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도 작게나마 작용했다.
소문은 틀린 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명성황후 민 씨의 15촌쯤 되는 일제강점기 갑부이자 매국노로 분류되는 '민영휘'가 바로 남이섬을 구입해 설립한 '민병도'의 할아버지가 된다. 민병도는 양자로 그 가문의사람이 된 경우인 데다 본인 스스로는 친일 기록이 없다. 하지만 명백히 친일 매국노의 후손이고 남이섬이 그의 재산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으며 그 후 3대에 걸쳐 남이섬에 간여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을 통해 남이섬이 친일재산이 아닌 민병도가 28년간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며 얻은 소득으로 구입한 것이란 소명이 받아들여지자 이후 '남이섬=친일'이란 꼬리표를 달아놓은 각종 보도와 개인 저작물에 적극적으로 소송을 걸어 연이어 승소했고 그 사실을 보수 언론들이 소개했다. 후로는 더이상 남이섬을 친일재산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인식개선'에 성공한 듯하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개인의 노력으로 재산을 모으지 못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만약 민병도 그에게 선친들에게 물려받은 일체의 다른 재산이 없고 오로지 '월급'이 그의 재산 전부였다면 논리가 타당하다. 그리고 그가 집안의 후광으로 일제가 세운 조선은행을 시작으로 해서 한국은행 총재까지 된 인물이 아니라 그저 그런 월급쟁이였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돈에는 주인만 있을 뿐 어디에서 벌은 것인지를 구별해 사용하진 않는다.
옛날 옛적에 100억을 빚진 어느 사람이 있었다. 친구의 전 재산을 빌렸던 것인데 이제와 돈이 없다고 갚질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통장에 아직 꽤 많은 잔고가 있어 따져 물으니,
"친구야. 네게 꾼 돈으로 투자한 것은 다 날렸지만 통장의 돈은 내가 28년간 월급을 모아놓은 것이라 네 돈과는 상관이 없단다. 전혀 다른 돈이니 신경 끄라"며 그간의 월급명세서를 보여준다. 그리곤 통장의 돈으로 무인도나 하나 사서 나무나 심으며 살 꺼라는 말만 무심히 뱉는다.
어리숙하게 전 재산을 잃은 친구는 그저 눈만 꿈뻑이며 아 그런가 보다 한다. - E숍 우화 중에서.
남이섬은 민병도 그의 월급으로 구입했다. 맞다. 사실일 거다.
그냥 궁금한데 그럼 남은 다른 재산으론 과연 100억 빚을 어떻게든 갚았을까? 매국노가 도륙한 재산을 겨우 100억 빚과 견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던 일본 육사출신 장교가 어느 때는 남로당 빨갱이가 되고 그러던 그가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이 나라가 보았으니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놀랄 것은 없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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