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26] 작은 새출발 - 이사 @광장동 극동아파트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저녁 늦게 비를 뿌려대던 엊그제는 이 아빠가 결혼 후 두 번째 이사를 한 날이다. 며칠 전부터 감기로 고생하던 네가 하루종일 이삿짐에 시달려 편히 쉬지도 못했지만 내내 아빠와 잘 있어 주어서 고마웠다.
비록 상계동의 집을 팔고 다시 전세로 옮겨오는 것이 조금은-아주 조금이다- 서운하지만 집값을 훨씬 올려서 오는 데다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크기의 공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네 엄마가 편해질 것 같아 다행하다. 게다가 그럴듯한 네 방을 꾸며줄 수 있는 방이 하나 더 생겨서 네 엄마는 마냥 좋은가 보다.
다른 방에 있던 밝은 전등을 네 방으로 옮겨 달기도 하고 제일 먼저 네 방의 커튼을 바꿔다는 등 아무튼 너에 대한 엄마의 애정은 각별한 것이다. 사실 전에는 공간이 적어서 새로운 물건이 뭐 하나 생겨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애를 먹었는데 낡은 집이긴 해도 마음은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또 하나 아빠가 횡재한 것이 있다면 출근시간이 10분정도로 짧아져서 한 시간 넘게 고생하던 것을 참 많이 편하게 출퇴근하게 되었다는 것. 어쩐지 괜히 기분도 좋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아 흥분되기까지 한다.- 오늘따라 주가마저 폭등이구나!
어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생활 근거지를 옮기는 이사만큼은 좋은 날을 고르고 방향을 골라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아빠는 그런 것은 내내 무시하고 사는 편이라 풍수지리에 무심하다지만 사람이 잠을 자고 생활하는데 집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견은 없다. 어쩌면 네가 태어나 여태껏 자라온 곳을 떠나 조금은 낯이 설기도 할 텐데 이곳에 네게 크게 도움이 되는 지역이 되었으면 하는 소원이다.
네 엄마가 또 준비하고 있는 공동육아 사업 역시 너를 제대로 잘 키우는데 보탬이 될 것이고.
네 방 바닥에 하나 둘 깔리는 색색의 매트들을 보면서 우리 가정의 행복도 조각 맞추듯 점점 커가길 기도한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3.11.8
이전에 쓴 글을 옮겨 확인하는 과정에서 본문에 쓴 이사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행히 최초 작성일을 찾을 수 있어서 제목에 2001년 11월 26일이라는 날짜를 글 쓴 날로 자신 있게 달았다.
그 후로 몇 번의 이사를 더 해 지금의 성북구 삼선동에 자리를 잡은지 또 십여 년이 지났으니 정말 오래 전의 글이다.
여전히 추억 속에 자리한 낡은 아파트. 지금은 그 옆을 지나면 너무나 달라진 주변 건물들이 낯설다. 하지만 혼자만이 그때 그대로인 광장동 극동아파트. 그곳만 22년 전 그대로다.
⬇️ ❤️ 아래 공감하트 하나 눌러주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