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딸, 하나님의 은혜에게

[2001.11.10] 하나님의 은혜에게 주는 처음 글

오늘의 알라딘 2023. 11. 7. 15:13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97년의 초여름은 지금 생각에도 무척 덥고 지루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삭이 된 네 엄마의 오래된 기다림과 아빠의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들이었고, 지루함 뒤편에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 같은 조급함이 가득한 그리 싫지 않은 날들이었다.

벌써부터 준비된 갖가지 옷가지와 우유병들, 앙증스럽기까지한 장난감들과 함께한 열 달의 흥분됨은 네가 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 전부터 엄마 아빠에게는 큰 행복이며 선물이었다. 당시 아빠는 회사에서 새로운 보직발령이 나지 않아 그 역시도 지루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네 엄마와 그 안의 너는 당시 나에게 큰 힘이었음을 글을 빌어 감사한다.

아빠로서 네게 해 줄수 있는 일들을 잠시 생각하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글을 남기기로 한다. 네 엄마가 조금은 셈을 낼 수도 있겠지만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네 엄마도 나 이상 널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하은아.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네가 얼마나 더 커야 이 글과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만은 작은 단상(斷想)들과  시구(詩句)를 하나하나 적어 넘겨주는 것이 수 억의 상속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 용기를 내어 시작해 본다.  쉬 터져 나오는 한 마디의 달콤한 말보다는 마음으로 손 끝으로 한 번 더 곱씹어진 투박한 글자들이 네게 더 큰 보석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많은 부모들이 육아일기를 자식에게 물려 주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지금 아빠에게는 변변한 육아일기가 있지도 않지만 너에게 쓸 글들은 단순한 육아의 기록이 아니라 진정 엄마 아빠가 마음으로부터 주려는 생각들을 담고 싶다.

모쪼록 이 작은 글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태어난 너에게 대한 아빠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전해줬으면 한다.

2001. 11. 10 겨울즈음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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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7

 

그 약속에 불구하고 그리 많은 글도 남기지 못했는데-잃어버린 글도 상당하다ㅠ-세월은 인정 없이 무섭게 지났다.

한글을 배우던 아이가 이제 짝을 만나 내년이면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그 사이 늙어버린 익어버린 부모들은 여전히 그 자리인데 떠날 자식만 남아있다.


22년이 흘러 저 글을 쓴 또 다른 겨울즈음이 됐다.

세월은 흐르고 추억만 남는 법인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이 그때로 다시 아리다.
찬바람 곁에 같이 늙은 익은 아내의 다리는 오늘도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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