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오늘

[2009.8.1] '귀'만 회춘하나 보다

오늘의 알라딘 2024. 7. 11. 09:03

나이가 들면 눈이나 귀가 좀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느낌뿐인지 모르겠으나 오디오에 심각히 빠져있는 요즘, '귀'는 점점 더 예민해진다. 눈이야 뭐 안경 벗으면 코 앞에 슈퍼 모델이 지나가도 구별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절대적 시력뿐이 아니다. 같은 사람-특히 연예인들-도 조금만 화장을 달리하거나 머리 스타일만 바꿔도 거의 구별해 내지 못한다. '인지 능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시력은 어떤 의미로든 퇴화해 가고 있다. 그냥 디자인을 보는 깐깐한 취향만 높아져 갈 뿐.

그런데 '귀'는 다르다.

 

예전엔 그냥 넘겼던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요즘은 무슨 보청기를 꼽은 것처럼 청신경을 건드린다.형광등의 안정기 소리. 냉장고 모터 소음, 선풍기의 팬 소리, 윗 집에서 타고 내려오는 배수관 소리며 의자 끄는 소리 그리고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이런 생활 소음은 물론이고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는 첼로의 활시위며, 고음의 일그러짐, 좌우의 미묘한 밸런스 차이, 케이블 교체에 따른 음질의 경화와 같은 귀로 구별되는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돌이켜 보면 내 평생에 지금처럼 이렇게 방음이 잘되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늘 허접한 낡은 길 가 집에서 새벽까지 마을버스의 요란한 엔진음을 들으며 살았고, 지나가는 사람이 허투루 내뱉는 욕지거리 하나까지 들리는 그런 곳에서 나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도 공부할 것 다 했고, 잠잘 것 다 잤고 그냥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비록 아파트 살이지만, LG의 자재로 시공된 이중 새시의 창호로 둘러진 단지 중간의 1층 아파트. 발코니 창 문만 닫으면 외부 소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공간. 적당히 높은 볼륨의 음악을 들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지난 40년간 듣지 못했던 '소음'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그냥 넘겨도 될 스피커의 화이트 노이즈. 진공관 앰프의 험. CDP 트레이의 동작음. 노트북 PC의 방열팬 소리......

호사에 겨워 점점 고급이 되어가는 이 놈의 '막귀'. 끝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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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7.11.

 

내가 직접 본 집안의 직계 친가 어른들이라 봐야 아버지와 할머니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두 분 다 안경은 안 썼고 말년에 보청기를 사용했다. 눈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귀에는 문제가 있던 경우이다. 하지만 난 어려서부터 눈이 별로 안 좋았고 지금은 노안도 제법 왔지만 귀는 아직 별 증세가 없다. 아직 증세가 발현되기 전일지도 모르니 나중에 귓병마저 생긴다면 최악의 케이스가 된다.

 

대개 어느 한쪽에 장애가 오면 대체감각 쪽의 민감성이 극도로 높아진다. 눈이 안 보이는 경우 촉감이나 청각이 발달하게 되는 이유인데 평생 눈이 좋았던 적이 없는 내 경우 그래서 귀가 그나마 온전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음악을 들을라 치면 좌측 스피커의 작은 화이트 노이즈와 기둥 뒤에 숨겨 놓은 NAS의 작동음 등이 여전히 거슬리게 잘 들리지만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애써 무시하는 쪽으로 감정(?) 컨트롤이 되고 있다. 까탈스럽게 보다는 BGM처럼 여기도록 학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좌우 밸런스라던지 스피커 토우인에 따른 음장감의 차이에 민감한 편이라 요즘은 새 스피커를 들이는 대신 스피커의 각도와 앞뒤 거리를 조절하는 것으로 색다른 변화를 즐긴다.

 

그나마 온전한 쪽도 있다는 걸 감사하며 늙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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