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올무 - 돈에 대한 생각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아담이 선악과를 탐한 이후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올무가 있다면 그것은 돈일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이를 벌기 위해 희생해야하고 결국은 삶의 상당 부분을 돈과 맞바꾼 것이기 때문에 돈을 벌었다기 보다는 인생을 팔고 돈을 사왔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루이스 야블론스키의 「돈의 감성지수」란 책에서 돈이란 심리적이고 개념일 뿐 실직적인 값어치란 없는 것으로 사람들이 비로서 가치를 부여할 때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돈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에게는 목숨의 가치가 있고 「무소유의 행복」을 역설한 이용범과 같은 사람에게는 돈 없음이 고통보다는 행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버는 일에 주어진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면 네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일에게서이길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기 보다는 선택당하고 산다. 설사 실직 상태의 사람이라도 그것을 선택했다고 보기 어려우니 결국엔 직업의 유무 보다는 인생 자체가 선택당함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벌이의 크기 보다는 벌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적잖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돈을 많이 벌 수만 있다면 다소 불쾌한 직업이라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돈으로 또 다른 취미나 사회생활을 통해서 제2, 제3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역시 나무랄 일은 아니겠으나 어려서 부터 네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것을 통해 직업을 결정할 수 있는 행운이 네게도 함께하길 소원한다.
이 세상의 부자를 결정하는 것을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사람의 크기라 생각한다. 그러니 너는 부자가 되길 애쓰지 말고 늘 부자로 살길 바란다. 부자가 되길 바란다면 그는 결코 부자가 되질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돈을 벌까보다는 어떻게 쓸까에 더욱 관심을 갖고 주어담기보다는 잘 관리하고 '보기 좋게' 돈이 줄어듬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함께 갖었으면 한다.
아빠의 어린시절은 그리 부유하게 지내진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초까지도 집에 텔레비젼이 없어서 저녁만되면 한동네의 큰고모네 집에 가서 텔레비젼을 얻어봤고 눈치도 없이 매일 저녁끼니를 신세졌었는데, 그 땐 고모댁 형편도 그리 넉넉하진 못했었나보다. 당시엔 떡국인줄 알고 자주 먹었던 그 저녁 음식이 나중에서야 밀가루 수제비인줄 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음식보다도 그때 그 수제비가 문뜩 생각나는 걸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화폐의 가치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눈높이에 있는 듯 하다. 가끔은 초등학교 시절 그 넓기만 했던 등교길을 다시 걷고 싶다. 지금은 겨우 차 한 대가 마주지나치기 힘든 좁은 길이지만, 아무 걱정 없었던 초등학생 그 마음으로 말이다.
너도 나누고 베품이 있는 지금의 네 마음을 늘 돌아보며 돈을 바라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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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9.
분명 2005년 이전에 쓴 글이지만 언제든 딸아이가 시간에 상관없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목에 추정되는 작성일을 뺐다. 그럴듯 써 놓았지만 나 역시 여전히 한쪽발에 채워진 올무가 견고하다. 돈의 크기와 무관히 스스로 부자로 살길 원했으나 생각처럼 자유하기 쉽지 않다.
하은이는 올해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내년엔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이미 올무의 크기에 대해 그 누구보다 심각히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시간의 열쇠가 마련되길.
본문에 쓴 큰고모가 두해전 돌아가셨다. 커서는 거의 왕래가 없었지만 빈소에서의 상봉에 성의를 다해 부조를 했다. 내가 얻어먹은 수제비값이라고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도 망자에겐 올무가 없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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