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10.6.9.]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 진공관 선별관 업체들

오늘의 알라딘 2025. 2. 7. 15:20

여름이 되면 진공관 앰프 사용자는 의례히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다. 바로 진공관들이 내뿜는 '열기' 때문에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한 여름엔 앰프 전원을 올리면 실내온도가 순식간에 30도를 넘어선다. 시청 공간이 밀폐된 작은 방인 경우엔 그 온도가 가히 살인적이 된다. 은은한 운치와 함께 진공관을 사용하는 매력 포인트인 진공관의 뜨거운 불빛이 여름만 되면 쥐약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쯤되면 여름 시즌에는 차라리 싸구려 빈티지 리시버를 사용하겠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내가 사용 중인 Tone Inc. 의 '판테온 mk3' 인티앰프도 구입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면서 두 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그 사이 몇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치면서 꽤 쏠쏠한 재미의 오디오질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스피커에 노이즈(험)가 있어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초단관 쪽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와중에 알아낸 사실은 진공관 중 노이즈와 밸런스에 관계된 문제는 주로 앰프의 프리부에 채용된 초단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통상 초단관은 출력관보다는 수명이 길다는데 1년 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꽤 빠른 노후화에 해당한다. 채용된 초단관은 러시아의 Electro Harmonics의 신관인 '6922 모델'인데 이 형번의 모델이 주로 노이즈에 취약하고 수명이 짧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 경우 한 쌍 중 오른쪽 초단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서 관의 좌우를 바꿔 험은 약간 잡았는데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기존 상자에 저런 식으로 테이프 하나 붙여서 두 배가까운 가격에 '선별관'이란 이름으로 판매한다.

이참에 초단관을 교체하려고 하는데 바로 진공관 업계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업체들을 만날 수가 있다. 바로 '선별관' 판매 업체라는 곳인데 진공관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성품으로 나온 진공관들을 LTMS 등의 컴퓨터 장비를 통해서 오로지 '검사'만 해서 고가로 판매하는 업체이다. 예를 들어 참외밭 앞에 서 있다가 '맛'있는 참외를 골라서 스티커 한 장 붙인 다음 정작 재배한 참외 농장과는 상관없이 비싼 값-거의 2배!-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맛있는 참외를 골라내는 그들만의 노하우-상태가 양호하고 주로 쌍으로 거래되는 진공관들 간의 특성이 일치하는 관들을 골라내는-와 수고를 인정하더라도 같은 농장의 참외를 두 배 가까운 가격에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속이 쓰리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도 벌써 14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진공관의 제조과정에 편차가 크다는 말이고, 진공관을 일반 개인이 테스트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참외 농장에서도 자기네 참외를 가지고 엉뚱하게 다른 업자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배가 아팠는지 'Premium Grade'라는 이름으로 자체 선별관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앤틱 셀렉션 Antique Selections', '골드 드래건 Gold Dragon', '골드 에어로 Gold Aero' 같은 선별 전문 업체의 위세가 대단하다.

 

어차피 같은 종자의 참외(?)이니 외양이 다를 리 없고 고작해야 포장 상자나 관의 다리 부분에 선별회사 스티커 한 장이 붙어 있거나 진공관 표면에 실크 인쇄 하나가 올라간 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안정된 성능 특성을 보이는 진공관에 목마른 오디오 마니아는 선뜻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봉이 김선달 시대 이후로 소비자는 늘 '봉'이었으니깐.ㅠ

 

※ 사족 - 엔틱셀력션의 Electro Harmonics 6922(골드핀)으로 교체한 결과 위약효과이겠지만 고질적인 노이즈와 밸런스 이상이 눈에 띄게 없어졌고 소리결 역시 단정해졌다. 비싼 참외가 역시 맛은 있더라....ㅠ ===333


[글 더하기]

오늘은 2025.2.7.

 

생각해 보니 뭔가를 골라주는 역할은 늘 쓰임과 부가가치가 있었다. 병아리감별사부터 요즘은 결정사(결혼정보업체)로 기업화한 뚜쟁이 마담이모까지 시시때때로 선택과 결정이 존재하는 인생사에 순간마다 도움을 주는 역할은 늘 가치가 있다.

 

꼭 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메뉴 선택지의 폭을 줄여 추천해 주는 것만으로도 선택이 용이해지고 이를 우리는 '맞춤형'이라 부른다. 어쩌면 이런 것이 오늘날의 배달의 민족을 만들었고 광풍이 불고 있는 AI의 시작이었다.

 

참외농부로 남을 것인가? 당도와 입맛에 맞는 선별자가 될 것인가? 

 

제길 이것 또한 '선택'이다.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