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오늘

[2010.8.2.] 하루키의 마지막 책 구입 - 1Q84, Book3

오늘의 알라딘 2025. 2. 25. 08:32

딸아이의 아이팟을 리퍼받으러 삼성동 코엑스에 간 길에 반디 앤 루니스에 들러 하루키의 신작 1Q84 제3권을 구입했다. 

 

1,2권 보다 제법 더 두꺼워 보이는 중량감 있는 양장본이다. 표지 디자인은 여전히 전편들과 같다. 이런 것은 'Q'字가 크게 디자인된 일본판을 참고해서 원작과의 통일성을 찾는 것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있다. - 겉표지를 벗기면 흰색의 양장본만 남는데 이게 훨씬 맘에 든다.

 

사실 하루키의 책은 이제 더 이상 구입하지 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미 충분히 사서 봤고, 그 만의 묘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슷한 소재와 주제로 책을 '찍어내는' 느낌의 다작 작가라 선호가 반감한 이유가 되었다.  

오늘도 딱히 이 책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내일부터 시작될 제주도 여행길에 가져갈 한 권의 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었고 이미 읽어 버린 1,2권을 마무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마지막'을 되뇌며 지갑을 열었다. 게다가 사무실 근처에는 쓸만한 서점이 없던 차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 경우가 되겠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앞의 몇 페이지를 열었으나 1장의 주인공이 되는 '우시카와'가 누구인지도 전혀 생각이 안 난다. 필시 1,2권을 대강이나 다시 정리하고 돌아와야 하나보다. 누가 1,2권의 요약본이라도 올려주거나 등장인물이라도 다이제스트 해 줬으면!

 

하루키답지 않게 3권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헤피엔딩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상은 벌써 1Q84의 '4권'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혹 이것이 마지막 책이 아닐 수도 있겠다. '1984'과 '1Q84'가 계속 반복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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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2.25.

 

굳이 책을 사서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장서 말고도 가끔 다시 읽어보려는 것인데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없다. 15년이 지난 후 돌아보니 저 두꺼운 책 세 권의 내용을 줄거리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낯선 등장인물의 이름 따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루키의 책은 읽는 동안도 내용파악이 어려운데 읽은 지 15년 후면 아예 새로 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책은 몇 권만 있으면 평생을 읽을 것 같아 지금 있는 것으로 충분해  다시는 안 사 보련다 했는데 매번 손이 나간다. 그만큼 중독적이다. 

세상의 모든 중독은 그만큼의 즐거움이 있다는 의미이다. 중독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이라 오히려 '슴슴한' 것에 거꾸로 끌리는 지경이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멜로무비'를 저녁마다 한 회씩 보고 있다. 영화판 주변 사람들의 에피소드로 '자극적' 소재 하나 없이 내 나이 이삼십 대를 소환하는 기분 좋게 '슴슴한' 이야기들이다. 최우식과 박보영의 연기인지 일상인지 분간이 안 되는 찰떡같은 호흡이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꽁냥거리는 청년들 모습 그대로다.

 

그래 이쯤이면 MSG는 조금 덜어내고 살 필요가 있다.

* 사족 - '슴슴하다'는 '심심하다'의 북한어 표현이다. 비표준어지만 평양냉면이 그렇듯 심심하다로든 도저히 슴슴하다의 어감을 낼 수가 없어 그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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