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5.11.] 비오는 날 어제 하루의 행적
영국 떨거지들이 모여사는 미국에는 사실 표준 발음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모방송국의 백인 남성발음을 표준으로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인종마다 동네마다 뿌리가 되는 모족어(母族語)를 기반으로 서로 다르게 발음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쩌다가 미국에 가 히스패닉 미국인들 발음하는 거 들어보면 '이따구로 영어해도 되는구나' 하는 공연한 자신감도 생길 정도다.ㅋ (개인적으론 힐러리 클린턴의 발음이 젤 좋아 보인다.^^)
암튼 알아먹기 힘든 영어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코스트코'라고 부르는 대형 할인매장의 발음이다. 지역 발음 익히기 사이트에 들어가 들어보면 [카슷~코우] 정도로 발음되는 이곳.
어젠 비도 오고 해서 딱히 갈 때도 없고 아내가 가자는 대로 오래간만에 '카슷~코우' 상봉점에 갔다. 내 경우엔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인데 사람으로 미어터지는군ㅠ 사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35,000원씩이나 하는 연회비를 내면서까지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전 잘 모르겠다. 심지어 무이자 할부도 없는데.
오늘도 주섬주섬 카트를 채우고 나니 몇 십만 원은 그냥 나왔는데 그중 내가 맘에 들어 구입한 물건이 몇 가지가 있다. 와인 몇 병과 와인 코르크 오프너다.

와인은 포토샵으로 유명한 Adobe와 이름이 같은 칠레산 레드와인인 'Adobe'인데 가격에 비해 썩 괜찮다. Dry 한 편이니 달달한 거 좋아하시는 분은 별로다 할 수 있다.
자~ 하지만, 오늘 진짜 장사하고 싶은 물건은 바로 '코르크 오프너'이다. (이 약 팔라고 많이 돌아왔네~, 에효)

물론 시중에도 간편한 오프너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힘'을 요구하는 물건인데 비해 '카슷~코우'에서만 판매하는 이 'Rabbit(토끼)'이란 와인오프너는 토끼 뒤 모양으로 된 손잡이를 잡고 레버만 한 번 올렸다 내리면 코르크가 그냥 '뽕'따지는 아주 편리한 물건이다. 와인매장 옆에 진열되어 있으며 29,900원이니 싸진 않다.
여성들이 와인코르크를 따는데 좀 애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집에 하나쯤 있음 평생 두고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어 보인다. 문제는 오프너가 자그마한 공구통만 크기라 일주일에 한 두 병을 마신다 쳐도 사용 후 이거 어디다 보관하기가 애매하다는 점.
비는 오겠다, 홀짝홀짝 사온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그림'까지 그리며 어제는 제대로 '예술'했다. 뭔 '그림'이냐? 면 딸아이가 또 '미술' 숙제를 한다길래 나도 옆에서 몇 장 그렸다. '의상디자인 스케치'가 주제라는데 이런저런 여학생용 교복 디자인을 해봤다. 내겐 가끔은 이런 엉뚱한 활동이 숨어있는 예술적 재능(?)을 자극하는 '새로운 일'이라는 측면에선 재미있는 작업이 될 때도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편하고 늘 하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의 업무를 생각해 보고, 같이 일하던 늘 같은 사람을 바꿔보기도 하고 하면서 뭐 이런저런 변화를 통해 생기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없던 생기도, 활기도 생기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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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4.18.
15년 전 하루의 일기 같은 글이다.
그 사이 영어발음이 제일 좋아 보이는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위원장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그의 중저음 발음을 듣고 있자면 안 들리던 영어가 들릴 지경이다.
카슷~코우는 더 이상 회원을 가입해가며 방문하지 않는다. 추천했던 Adobe 와인도 그것으로 끝이다.
소개했던 와인 오프너 '토끼'는 어느 순간 집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산토끼가 된 듯하다.
딸아이가 출가했으니 숙제하던 딸아이도 없으니 더이상 그림을 그릴 기회도 없어졌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생각해 보니 15년 전의 많은 것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느꼈다.
그게 다 없던 생기도, 활기도 생기는 일은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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