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오늘

[2011.5.11.] 비오는 날 어제 하루의 행적

오늘의 알라딘 2025. 4. 18. 09:03

영국 떨거지들이 모여사는 미국에는 사실 표준 발음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모방송국의 백인 남성발음을 표준으로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인종마다 동네마다 뿌리가 되는 모족어(母族語)를 기반으로 서로 다르게 발음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쩌다가 미국에 가 히스패닉 미국인들 발음하는 거 들어보면 '이따구로 영어해도 되는구나' 하는 공연한 자신감도 생길 정도다.ㅋ (개인적으론 힐러리 클린턴의 발음이 젤 좋아 보인다.^^)
 
암튼 알아먹기 힘든 영어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코스트코'라고 부르는 대형 할인매장의 발음이다. 지역 발음 익히기 사이트에 들어가 들어보면 [카슷~코우] 정도로 발음되는 이곳.
 
어젠 비도 오고 해서 딱히 갈 때도 없고  아내가 가자는 대로 오래간만에 '카슷~코우' 상봉점에 갔다. 내 경우엔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인데 사람으로 미어터지는군ㅠ 사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35,000원씩이나 하는 연회비를 내면서까지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전 잘 모르겠다. 심지어 무이자 할부도 없는데.
 
오늘도 주섬주섬 카트를 채우고 나니 몇 십만 원은 그냥 나왔는데 그중 내가 맘에 들어 구입한 물건이 몇 가지가 있다. 와인 몇 병과 와인 코르크 오프너다.

와인은 포토샵으로 유명한 Adobe와 이름이 같은 칠레산 레드와인인 'Adobe'인데 가격에 비해 썩 괜찮다. Dry 한 편이니 달달한 거 좋아하시는 분은 별로다 할 수 있다.
 
자~ 하지만, 오늘 진짜 장사하고 싶은 물건은 바로 '코르크 오프너'이다. (이 약 팔라고 많이 돌아왔네~, 에효)

물론 시중에도 간편한 오프너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힘'을 요구하는 물건인데 비해 '카슷~코우'에서만 판매하는 이  'Rabbit(토끼)'이란 와인오프너는 토끼 뒤 모양으로 된 손잡이를 잡고 레버만 한 번 올렸다 내리면 코르크가 그냥 '뽕'따지는 아주 편리한 물건이다. 와인매장 옆에 진열되어 있으며 29,900원이니 싸진 않다.
 
여성들이 와인코르크를 따는데 좀 애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집에 하나쯤 있음 평생 두고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어 보인다. 문제는 오프너가 자그마한 공구통만 크기라 일주일에 한 두 병을 마신다 쳐도 사용 후 이거 어디다 보관하기가 애매하다는 점.
 
비는 오겠다, 홀짝홀짝 사온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그림'까지 그리며 어제는 제대로 '예술'했다. 뭔 '그림'이냐? 면 딸아이가 또 '미술' 숙제를 한다길래 나도 옆에서 몇 장 그렸다. '의상디자인 스케치'가 주제라는데  이런저런 여학생용 교복 디자인을 해봤다. 내겐 가끔은 이런 엉뚱한 활동이 숨어있는 예술적 재능(?)을 자극하는 '새로운 일'이라는 측면에선 재미있는 작업이 될 때도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편하고 늘 하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의 업무를 생각해 보고, 같이 일하던 늘 같은 사람을 바꿔보기도 하고 하면서 뭐 이런저런 변화를 통해 생기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없던 생기도, 활기도 생기는 것은 아닐지?


[글 더하기]
오늘은 2025.4.18.
 
15년 전 하루의 일기 같은 글이다.

그 사이 영어발음이 제일 좋아 보이는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위원장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그의 중저음 발음을 듣고 있자면 안 들리던 영어가 들릴 지경이다.

 
카슷~코우는 더 이상 회원을 가입해가며 방문하지 않는다. 추천했던 Adobe 와인도 그것으로 끝이다.
 
소개했던 와인 오프너 '토끼'는 어느 순간 집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산토끼가 된 듯하다.
 
딸아이가 출가했으니 숙제하던 딸아이도 없으니 더이상 그림을 그릴 기회도 없어졌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생각해 보니 15년 전의 많은 것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느꼈다.
그게 다 없던 생기도, 활기도 생기는 일은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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