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오늘

[2009.10.4.] 불편한 이웃이랑 같이 살기

오늘의 알라딘 2024. 9. 27. 09:03

오늘은 밤 10시에 시작되었지만 보통은 매일 밤 11시, 이쯤 되면 의례히 침대에 누워 어디선가 시작되는 '냄새'를 기다린다.

악취라고 까진 할 수 없지만 이 늦은 밤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냄새다. 아파트 발코니 배관을 타고 내려오는 흔히 '락스'라고 불리는 세척제 냄새, 욕실이나 변기 청소 혹은 흰 옷감의 표백제 또는 수영장에 쓰는 염소계 소독약 냄새, 바로 그 냄새를 기다린다.

언제부터 내가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을까? 결혼 이후 벌써 15년째인가? 나 스스로를 아파트 생활의  '공공의 적'이라 부르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 '오디오' 소음 때문이었다. 그나마 아파트 1층 만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데 여기엔 그만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2009.7.22.] 내가 바로 '공공의 적'이다.

사회통념 상의 '공공의 적'의 순위를 매긴다면 맨 앞은 아니더라도 우리 집이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나랏법상의 기준은 모르겠으나 공공주택에서 '소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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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없이도 생활 가능하다는 점과 아랫집 눈치를 딱히 볼 일이 없다는 점은 계단 오르내리기에 별 부담이 없고 '소음' 유발자인 내게는 크나큰 장점이다. 반면 늘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점과 거꾸로 위층과 외부의 소음을 나 역시 각오해야 한다는 점은 참기 힘든 단점이다.

그리 밝은 실내를 선호하지 않는 나로선 외부의 시선은 커튼을 이용해 해결한다 하지만, 소음은 늘 역부족이다. 왜 그리 가구를 옮길 일이 많은지 윗 층 201호는 시간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의자를 밀고 미닫이 문을 열고 닫는다. 늘 불편하다. 

그래서 이제껏 아랫층에 살면서 피차 주고받을 수 있는 오감적인 불편함은 오직 '소음'뿐이라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후각'적으로도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늘 같은 추석 명절에도 위층 어느 집에서는 어째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락스' 청소를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밤 11시. 귀신이 출몰한다는 '자시 子時'에? 

온 국민이 100세를 사는 세상이 온다 하니 그렇게 보면 썩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결벽증의 도를 넘어 매일 밤 발코니 바닥을 완전 무결하게 소독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이는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늘 말끔히 감추어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어떤 생각을 강제로 주입하고자 하는 노력을 우리는 '세뇌'라 부른다. 이제는 락스 냄새를 맡지 않으면 하루가 마감이 안 되기는 우리 쪽도 마찬가지이니 '세비 洗鼻'가 된 걸까?

불편한 이웃과 함께 생활하는 나. 공공의 적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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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9.27.

 

월말이 다가오다 보니 회사 업무도 밀리는 데다 딸아이 결혼 준비 역시 막바지에 치닿다 보니 까만 날엔 꼭 하나씩 글을 올리던 루틴이 많이  깨졌다. 며칠 쉬는 동안 꺼내 들은 오래된 글이 2009년 9월에서 드디어 10월로 계절이 바뀌었다.

 

본문의 락스냄새 루틴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옆 동으로 우리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일단락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옮겨온 집에서는 주변의 이웃이 얌전한 편이라 뭔가에 스트레스가 일어날 만한 오감적 불편함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뭔가 시간을 정해 발생하는 불편함은 그나마 덜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온 나라를 집어삼킨 새벽배송의 유행이 새벽 네댓 시부터 택배 차량이 돌아다니게 만들더니 화물차 소음의 루틴이 생겨났다. 일부러 그러진 않겠지만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존재감을 과시하듯 화물칸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온 아파트 단지에 쩌렁쩌렁하다. 아 지금쯤 네시 반 이겠구나. 별다른 알람 없이도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주변 아파트의 대규모 재개발 단지 공사 때문에 날이 밝자마자 시작되는 발파소음과 천공 소리가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린다. 주말에만 쉬니 이틀만 들으면 되는데 매일 집에 있는 경우라면 일주일 내내 이렇게 살아야 하는 형편이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공의 적은 나 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놈'이 생겨났을 뿐.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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