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념 상의 '공공의 적'의 순위를 매긴다면 맨 앞은 아니더라도 우리 집이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현듯. 나랏법상의 기준은 모르겠으나 공공주택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아파트 단지 내의 몇 집 안에 들어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는 아내의 부업거리가 그렇고
둘째로는 첼로와 피아노를 공부하는 딸아이가 있으니 그렇고 (게다가 가끔 나도 악을 쓰며 기타를 쳐서 여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ㅋ)
셋째로는 자주는 아니지만 서브우퍼를 동원하여 5.1 채널로영화감상을 하는 홈시어터 시스템이 있어 그렇고
네째로는 나의 지독한 취미인 오디오 생활로 인해 적어도 새벽 1시 근처 까지는 음악이 끊어질 날이 없어서 그렇고
마지막으로는 오늘의 화두인 토이푸들 강아지 '제나'가 있기 때문이다.
나름 음향공학적(?)으로 제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파트 1층을 고집하며 살고 있는 양심(?)적인 우리 집이지만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스스로 '공공의 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제길.
그중 심각한 문제로 목하 고민 중인 것이 '강아지'이다. 식구가 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으니 강아지라고 부르긴 犬界에서는 남사스러운 연령이지만 토이푸들인 덕에 여전히 보기에는 '강아지'이다. 워낙 개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외동으로 자라는 딸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도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껏 키워 본 개 중에서 유일하게 진짜 종이로 된 혈통서(족보)가 있는 강아지. 여러 마리의 형제견 중에서 고르고 골라온 강아지. 그런데 이 '망할 놈'의 강아지가 문제다-암 놈이니 '망할 암놈'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바로 헛짖음이 문제다.
하긴 꼭 정해진 경우에만 짖으니 '헛'짖음은 아니지만 집에 자기를 혼자 놔두고 사람들이 외출하는 꼴을 못본다. 보통 철제 케이지에 가두어 놓고 나가게되는데 어찌 잘 아는지, 외출하려고 폼을 잡는 순간부터 짖어대기 시작하는데 한 마디로 동네가 떠나간다. 1층인 탓에 밖에서는 오히려 더 잘 들린다. 혹시나 싶어 오디오를 함께 틀어 놓아 소리를 상쇄해 볼까 했는데, 탄노이 켄터베리 소리는 문 밖에선 거의 들리지도 않고 오직 우리의 자랑스러운 '개소리'만 쩌렁쩌렁 새어 나온다.
몸 통은 주먹만한 녀석이 주둥이에 무슨 슈퍼 트위터를 달았는지 고주파음이 사람을 아주 잡는다. 무슨 음대 성악과를 나와서 복식 호흡에 두성으로만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희한한 건 목도 안 쉰다.
없애(?)버릴 수도 없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을 겪어야 하니 매일매일이 정말 난감 부르스다. 몇 번 때려보기도 했는데 이게 점점 '맷집'이 생기는지 아님 '간'에 문제가 있는지 슬슬 으르렁대기까지 한다.
이래 봬도 내가 명색에 교육 담당자인데 교육 효과가 전혀 없는 이 싹수없는 강아지를 어찌해야 할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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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6.20.
문제의 반려견은 지난 2017년 새해 첫날 세상을 떠났다-공교롭게도 아내 생일이라 그해 생일은 아예 망쳤다. 갓 태어난 지 몇 달의 강아지를 입양해 수를 다할 때까지 키운 거의 유일한 녀석이었다. 유독 아내를 따랐고 본문의 헛짖음도 결국 분리불안의 발로였기 때문인데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누어 사는 연습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이다.
요즘 세상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강형욱 같은 개 훈련사들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의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때도 아니었고 윽박지르고 큰소리로 '그만해'를 외치거나 힘이 빠질 때까지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집에 더이상 개소리는 사라졌다. 아내가 피아노 레슨을 접어 피아노 소리도 없어졌고 아이는 더 이상 첼로를 잡지 않는다. 이사 오면서 홈시어터는 철거했다. 내가 기타를 쳐봐야 이제 일 년에 몇 번이다.
갑자기 우리집이 '공공의 적'에서 순한 맛의 '조용한 가족'이 되어 버렸다.
유일하게 오디오가 남았지만 이제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내와 저녁 먹으며 OTT들 보는 재미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집 대신 가끔씩 같은 동 윗집의 덩치 큰 개가 짖는다. 이름은 구찌. 명품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삽살개를 닮은 시고르자브종인데 하루 두어 번 산책에 열심인 주인을 두었지만 조금만 심심해지면 하울링이 심하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연식 탓인지 다른 사람에게는 무심한 녀석이다. 짖는 녀석이 이 놈이구나 하면서도 밉지가 않다. 자꾸 막내딸이었던 '제나'가 교차편집으로 생각나는 탓이겠지.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 제나가 다 늙어서 몇 번 뿐 함께 산책한 기억도 없다. 약골이라 어려서부터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해서 편하게 해 준다 한 것도 있지만 지금도 후회가 있다.
불법이지만 아이방 바로 아래인 산책로 옆길 땅을 파고 제나의 한 줌 작은 주검을 내 손으로 묻었다. 내게 몇번의 기억으로 남은 제나와의 산책을 나섰던 바로 그 길 옆이다. 제나도 나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이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일방적이 선택이다.
이제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가는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를 살고 있다.
제나가 떠난 17년 그해. 이번엔 내 생일을 껴 강원도 인제의 시인 '박인환'의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갑자기 엉뚱맞게도 공공의 적의 주연을 맡았던 '제나'를 추억하며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이 떠오르는 건 어쩐 일인지.ㅠ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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