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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카메라 사진찍기

[2008.3.11]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이면을 보는 시선의 힘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2. 13.

1) 한 장의 사진, 1천 분의 1초의 장면, '결정적 순간'으로 말한다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가업을 거부하고 그림과 영화 공부를 하며 세상을 떠돌았다. 사진작가로 전업하게 된 것은 1930년 경부터다. 그가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마틴 문카치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라고 한다. 흑인 청소년 세 명이 탕가니카 호수 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을 뒤에서 포착한 이 사진 속에는 브레송이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는 "대개의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현상을 1천 분의 1초 동안 포착한다. 바로 이것이 르포 사진의 원칙이다. 1천 분의 1초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이미 본 것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르포의 실천적 측면이다."라고 말한 마틴 문카치의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당시의 관습을 벗어나 캔디드(candid)한 스냅사진을 찍을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라이카 카메라 한 대만을 손에 쥐고 르포 사진의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의 라이카에는 거리측정기도, 노출계도 없었다. 초점거리 50밀리미터에 조리개 3.5인 하나뿐인 렌즈가 뺄 수도 없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2) 평범한 세상의 풍경, 그 뒤에 빛나는 철학과 영감

그는 일생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친구이자 동시대에 활동했던 로버트 카파의 사진과 종종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로버트 카파는 포토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와 분쟁 지역 등의 역사적 현장에서 사진을 통해 인간의 폭력을 치열하게 고발해 왔다.

이에 비해 브레송의 사진들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사진 속에 표현된 인간 군상의 모습 뒤에는 각각의 삶의 여정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철학을 이야기하고, 보는 이를 영감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피사체에 대한 그의 정밀한 묘사력과 직감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는 자신이 사진에 어떤 트리밍도 하지 않는 무보정주의자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셔터를 누른 그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식의 보정이든 그 순간의 진실성을 훼손시킨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사진을 찍기 위한 어떤 연출도 거부했다.

그의 사진 작업은 그의 시선 속에 '결정적 순간'이 잡히기까지의 길고 긴 기다림의 과정이었다. 한 번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기자가 그와 함께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타난 브레송은 여전히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술 마시러 오면서도 사진을 찍을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건 아니지만, 어디든 라이카를 놓고 다닐 수는 없어서 그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태도와 열정이 바로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 필자
안영진 / 자유기고가
사진출처 : 매그넘 포토즈(http://www.magnumphotos.com)
본문출처 : 마이삼성매거진


[글 더하기]
오늘은 2023.12.13.
 
오래전 퍼왔던 글이었다.
사진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 더구나 라이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브레송 그의 흑백 사진 한 장을 안 보고 넘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로애락이 묻어 있으나 종군기자의 그것처럼 파괴적이지 않고 풍경사진가의 비현실적 아름다움도 없다. 그냥 우리의 일상을 잔잔히 관조하는 담백함의 진수다.
 
포장과 양념 치기, 생존을 위한 자기 과시에 지친 우리들에게 내밀히 숨은 순수함에 기인한 담담한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한다. 굳이 이쁘거나 화려할 필요 없이도 일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한컷 흑백사진이 웅변한다.
 
초상권이 말랑한 시대여서 가능했겠지 싶지만 늘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했을까?'하는 기술적 관심보다는 '그 자리에 그가 어떻게 있었을까?'가 늘 궁금했다. 결국 늘 어딜 가든 카메라를, 그것도 라이카로 휴대하고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거고 DSLR을 사용할 때는 '그게 어려우니 난 안 되는 거야' 하고 핑계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젠 예전 DSLR보다 몇 배는 뛰어난 해상도의 스마트폰을 '늘' 휴대하면서 산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간다. 그런데 왜 저런 사진을 못 건지는 걸까?
 
누구 손에 들린 장비냐가 문제의 답으로 점점 귀결될 때마다 일찍 사진을 내려놓은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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