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Fi라 부르기 낯간지럽지만 튜너 신호가 안 잡히는 이유 때문에 노트북으로 'KBS콩'을 듣는, 인터넷라디오 수준의 그것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노트북도 '펜티엄 3'급의 소니 바이오 퇴역기라 메모리며 저장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PC-Fi는 엄두도 못 냈다. 그저 가끔 라디오가 듣고 싶거나 영국의 스트리밍 방송인 'ClassicFM'을 BGM으로 듣고 싶을 때만 겨우 부팅해 사용했다.
하지만 한번 부팅이라도 하려면 족히 3~4분은 걸리는 데다, 그 사이에 안 깔았던 윈도즈며 안티바이러스의 엔진 업데이트를 먼저 해서 가뜩이나 느린 노트북을 어쩌다 사용하려면 성질만 더 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아이폰이 생기면서 라디오 어플을 이용해 온교 'ND-S1'같은 DDC에 물려서 부팅 없이 바로 인터넷라디오에 접근하다 보니 이 고물 노트북을 사용할 일이 점점 더 없어졌다.
밉다 밉다 했더니 이 구형 노트북이 이제는 대기 상태에서 전기 노이즈음까지 내고 있어서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겠다. 그러다 거실 테이블에서 사용 중인 ASUS 노트북-17인치 대형이라 노트북이라 부르기 민망하다-이 한 대 더 있어서 이걸 이용해 PC-Fi를 하면 쓸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양도 여느 데스크톱 못지않은 데다 USB포트도 많아서 케이블 연결에도 부담이 덜하고, 대형 노트북이다 보니 하드디스크를 2개나 장착할 수 있어서 아직까진 별도의 저장공간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늘 거실에 있을 땐 노트북 앞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기 마련인데 자리에 꼼짝 않고서도 음악을 갈아댈 수 있다는 새로운 장점을 생각하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특히 ASUS 노트북의 최대 장점이 있는데, 팬소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CPU와 그래픽카드용으로 각각의 팬이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설계 덕분에 팜레스트 부위에서는 전혀 열기를 느낄 수 없다. 아니 실제 발열도 적고 팬성능이 탁월해서 무소음에 가깝다.
아이팟독 겸용 DDC인 온교 'ND-S1'까지의 거리가 3m 정도 나오니 여유를 생각해 5m 정도의 USB A-B케이블을 새로 구입했다. 오디오 전용으로는 보자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가 케이블이 넘쳐나지만, 물릴 DDC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 심각한 PC-Fi는 아니므로 막선을 면하는 미터당 만 원 수준의 독일제 '클릭트로닉' 케이블로 준비했다. 24k 금도금으로 단자처리 되어있는 오디오 레벨의 신뢰할 만한 케이블로 보인다.
싸구려지만 DDC도 있고, 본격 하이엔드라 부를 수 있는 린데만 CDP의 DAC도 있고, 판테온 Mk3 앰프도 있으니 연결 USB케이블만 있으면 손쉽게 하이엔드 PC-Fi로 가겠구나 했는데 이게 웬걸? 정작 케이블은 준비되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최신 버전의 푸바(Foobar2000)를 Full 옵션으로 새로 깔고 필요한 컴퍼넌트.dll 파일들을 설치한 후, 노트북 스피커로는 정상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실제 USB케이블을 통해 DDC에 연결만 하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노이즈와 잡음 그리고 소리 끊김이 발생했다. 아! 미칠 노릇.
※ 참고 : Foobar를 설치할 때는 용량도 별 차이 없으므로 설치 옵션에서 'Full'로 설치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필요한 컴포넌트가 충분히 깔리고, 리핑할 때 음반 정보를 물어올 'FreeDB' 등의 추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존 설정을 유지하면서 언제든 필요할 때 새로 설치할 수 있다.
처음엔 노트북에서 나가는 신호의 Bit rate가 DDC나 DAC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온갖 조합을 다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구글링을 통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의 문제는 다음 세 가지 문제로 좁혀졌다.
- 윈도 7에서 기본 제공하는 USB Audo DAC 드라이버가 DDC 등의 외장장치와 맞지 않는다는 설. 이 경우 XP용 드라이버로 교체하면 된다는데 방법이 쉽지 않다. 온교 ND-S1의 경우 자체 드라이버가 아닌 윈도즈 기본 드라이버를 사용하므로 가능한 추정이긴 했는데 설치 방법이 만만치 않아 일단 보류했다.
- ASUS 노트북의 사운드카드 드라이버와의 충돌이라는 설. ASUS가 쓰고 있는 멀티미디어 관련 드라이버가 악명 높으니 내장 드라이버는 모두 삭제하고 시도해 보라는 것. 하지만 사운드카드를 바이패스해서 USB 포트로 신호를 내보내려는 플로우를 생각해 보면 수긍하기 쉽지 않았다.
- USB포트의 고질적인 전원공급 문제라는 설. 충분하고 안정적인 전원공급이 포트에 공급되지 않는 문제이니 바이오스 설정에서 전원 관련 고급 관리설정들을 모두 제거해 보라는 것. 하지만 ASUS 노트북의 바이오스 셋업 화면에서는 전원 관리 메뉴를 확인하기도 어려운 특이한 구성이라 이 역시 포기.
공연히 케이블 값만 버린 셈이어서 밀려오는 정신적 공황상태의 쓰나미에 며칠을 고민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는데 구글이었는지 네이버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줄 지나가는 말로 쓰여 있는 것이 있었는데..... 내용인즉,
"안 되면 다른 구멍에 꽂아보세요~"
사용 중인 ASUS 노트북엔 좌우에 두 개씩 모두 4개의 USB 포트가 있다. 그중 오른쪽 포트 쪽에 마우스가 꼽혀있으니 DDC는 이쪽을 피해서 사용하려고 이제껏 노트북의 왼쪽 포트 두 개를 이용해 번갈아 시도해 봤던 것인데, 미친척하고 오른쪽에 비어 있는 포트에 연결했다. 유레카! 세상에...... 그 많던 잡음이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드디어 신세계가 열렸다.
결국 무슨 이유에선지 노트북의 왼쪽 USB포트 두 개와 오른쪽 두 개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 언급한 드라이버 충돌 문제든 전원부의 문제이든 좌/우가 서로 다른 통제하에 있다는 점에서 혹시 USB포트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포트를 총동원해 시도해 볼 일이다. (실제 데스크톱의 경우에도 전면부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 본체 뒷면의 USB포트를 활용해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ND-S1에서 전송된 신호를 CD표준인 44.1의 4 배수가 되는 176.4khz로 업샘플링시켜 주는 린데만 CDP의 DAC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젤 좋은 DAC 중의 하나를 쓰고 있다는 것엔 아무도 토 달긴 어려울 것이고 Foobar2000의 깔끔한 편의성과 확장성을 감안하면 음악감상의 새로운 세상이 '드디어' 열렸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온교 ND-S1이 16bit/48khz까지만 수용하므로 Foobar에서 높은 값의 샘플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하긴, 린데만 DAC에서 어차피 업샘플링이 일어나므로 앞단에서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보관 중인 CD 중에서 자주 손이 가는 녀석들을 먼저 무손실압축인 FLAC(레벨 8)로 차례대로 리핑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는 린데만 CDP에 CD를 갈아 끼우려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이외에는 아직 딱히 좋아진 점도 없지만, 앞으로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들을 중심으로 고품질의 음악을 거실에 편히 앉아 조작한다는 점은 귀차니즘에 찌든 내게는 새로운 PC-Fi의 새로운 시작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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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4.15.
무슨 영화를 보자고 저리 장문의 글을 썼을까? 아마도 몇십 년 매일 올리던 블로그질 중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긴 글이다. 뭐 그만큼 제대로 된 Pc-Fi에 대한 목마름의 표시였을 거다. 지금처럼 네트워킹 기반의 스트리밍까지 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직은 기다란 USB 케이블로 거실을 가로질러 디지털 음원을 보내는 정말 'PC' 파이였다.
긴 글을 혹 읽어내려 오신 분이라면 여기쯤에선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짧게 줄인다.
음악을 듣는 형태와 방법은 계속 변화하지만 늘 듣는 정겨운 음원은 항상 그대로다. 아무리 좋은 차로 다녀봤자 내가 갈 곳은 늘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그래서 이쯤 되면 뭐가 중한지는 많이 고민 안 해도 답이 있다.
아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구멍이 여러 개 있는 건 다 생각 외의 용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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