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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하나님의 은혜에게

[2005.2.11] 너에게 엄마라는 존재에 관하여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1. 8.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이 세상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여자들 중에서 네 엄마가 바로 네 엄마임을 감사해라. 몸의 절반을 이루고 있을 엄마의 유전자는 그만두고라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난스레 최선의 것으로 너를 길러 온 네 엄마의 정성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만하다. 이 땅에 작은 호흡을 이어가게 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만 하지만 네 엄마의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아빠의 어린 시절은 그리 넉넉지 않았을뿐더러 건강치도 않았던 것 같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의 호사스러움은 누리지 못한 생사를 건 유아기를 보냈고 지금의 네 나이보다 어린 시절엔 폐결핵을 앓아 1년이 넘는 투병생활을 버텨냈다고 하니 이 아빠 역시 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녹여 놓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간 별 탈이 없다가도 몇 년에 한 번씩 흔치 않은 질병을 크게 앓는 것으로 봐선 어린 시절의 병치레의 기운이 아직 세월을 두고 유전하나 보다. 하지만 네가 이때까지 별다른 병치레가 없을 뿐 아니라 또래보다 훨씬 건강한 것은 오로지 네 엄마의 공임을 잊지 말아라.

 

내색은 않지만 네 엄마는 네게 모유수유를 못한 것이 내내 안타까웠나 보다. 요새의 풍조이기도 하지만 분유 급유를 네 엄마가 처음부터 하려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도 이미 분유에 길들어 버린 네게 이유식만이라도 엄마 손으로 제대로 만들어 주려는 욕심이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유식으로 세상 음식에 적응하는 동안 너는 내내 네 엄마가 손수 준비한 야채와 미곡, 과일들로 만들어진 이유식으로 시작했고 남들이 잘 안 하는 치아의 불소코팅며, 좋은 어린이집을 찾기 위해 멀리 까지 애를 쓰며 찾기도 하고- 이번 2001년 11월 24일에 이사를 하는데 이 중 절반의 이유는 바로 너를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다-정말 어찌 보면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싶다.  하지만 한결같은 네 엄마의 너에 대한 정성은 애틋하기까지 한 것이다.

 

세상의 어미 된 사람들의 공통점을 세상사람들은 모성애라고 부른다. 품성이고 부인되지 못할 본능이지만 세상 어머니에게 점수를 줄 수 있다면 네 엄마는 틀림없이 선두에 올릴 만한 사람이다. 네가 자라고 생각이 커감에 따라 얼마간 부모에 대한 의존도 줄 것이고 서서히 준거집단 역시 세상의 친구들과 모임으로 이동하겠지만, 지금이나 나중이나 네 몸의 절반과 네 생각의 바탕 역시 네 엄마로부터다.

 

요새는 좀 덜하지만 네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가끔씩 한 밤중에 열이 올라 몸이 불덩이가 된 적이 있었는데 물수건을 갈아가며 밤을 꼬박 새워가며 간호를 하는 네 엄마를 잠결에야 겨우 눈치채고 그제야 네가 아픈 것을 알아차렸던 이 아빠를 너무 흉보지는 말아라.

 

네 엄마는 참 약한 사람이다. 가끔씩 아빠에게 오기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영락없이 약한 여자이다.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이 많아 손해 보기 십상인, 손해를 보고도 아무 말 못 하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을 손해 없이 이익만 보고 살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내내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네 엄마를 닮은 네가 되길 바란다. - 사람의 체온은 그 사람과의 마음의 온도와는 무관하나 보다. 가끔씩 잡아보는 네 엄마의 손은 왜 이리 찬 지.ㅠ

 

오늘도 네 엄마에게 네게 무심하다며 핀잔을 들었다. 요새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피곤한 모습을 보인 것이 네 엄마는 네게 소홀한 것으로 마음이 상했나 보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고 집에 늦게 돌아와 안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면 쏟아져내리는 수면의 유혹은 너무나 이기기 힘든 것인데도, 아빠 역시 아빠 입장을 이해 못 해주는 네 엄마가 서운하기도 하지만 모두 너를 위한 엄마의 잔소리로 웃어넘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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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8

본문의 문맥을 보니 작성한 해는 적어도 2001년 11월 이전으로 추정된다. 무려 22년 전 글이다.

딸아이가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던 시기일 것이다. 지금 다시 보니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뭐 하나 틀린 말은 없다.

 

그 후로 22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이를 위해 전부를 희생했고, 조금은 부모의 욕심이 섞였지만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해 배움을 제공했다. 수시로 바뀌는 장래희망과 현실 속에서 선택의 지경들 마다 딸의 결정을 신뢰했고 그것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마음이 따뜻한 네 엄마를 닮기 바란다는 22년 전 나의 바람이 통했는지 오늘 본 딸아이의 카톡 프로필은  '따뜻한 사람'.

 

덕분에 입동인 23년의 오늘도 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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