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남자의 오늘

[2009.5.12.]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인권을 생각하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4. 5. 3.

어제 홈 시어터를 이용해 '용의자 X의 헌신'을 봤다. 전체적으로 점수를 준다면 85점. 

스토리야 뭐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탄탄하고 주인공인 수학천재 '용의자 X'의 연기가 탁월하다. 하지만 무신경할 정도로 배경음악이나 효과음향에 대한 배려가 적고 단조로운 카메라 워크에서 점수를 까먹었다. 아무튼 영화 초반의 지루함이 있으나 나중에 이것들 역시 모두 복선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재미있다. 

미리 책으로 읽은 아내는 책보다 지나치게 전개가 빠르고 생략된 내용이 많다고 하니 책을 다시 정독하는 것도 좋겠다. 게다가 머리 나쁜 감상자를 위해 친구 물리학자 '유카와 선생'이 너무 자세하게 범행 풀이(?)를 해주는 탓에 도무지 다른 상상을 할 수 없게 결론을 내버린다.

줄거리를 다 말할 필요는 없지만,

실제 살해를 당한 여주인공의 '남편'을 대신하여 용의자 X(수학천재)는 노숙자를 추가로 살해해서 남편으로 위장한다. 용의자 X는 노숙자의 지문을 버너로 태워 없애고 얼굴은 둔기로 내리쳐 형체를 알 수 없게 만들어 논 상태이므로, 경찰은 그  노숙자가 '남편'의 이름으로 숙박한 여관에서 찾아낸 모발 등이 일치한다는 이유로 그(노숙자)를 '남편'으로 단정한다.  이 전제가 없으면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안된다.
 
여기에서 정말 '한국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의 시체로 가장한 노숙자의 시체와 함께 그(노숙자)가 사용한 자전거가 발견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노숙자의 지문이 묻어 있다. 그런데도 영화에서는 남편의 이름으로 투숙한 여관에서도 같은 지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그를 남편으로 단정한다.

이게 말이되는가? 지문하나면 그 사람의 신원이 바로 튕겨 나오는 세상에 뻔히 지문이 나왔는데 그 걸 다른 사람으로 '오인'한다고?

물론 영화 속에 나오는 일본 경찰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긴 하지만, 시대의 배경이 뭐 과학기술이 한 참 떨어진 옛날도 아니고-우리 집에도 없는 닌텐도 위가 나오는 걸 보면 아주 요즘의 이야기이다- 이건 좀 너무했다.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오늘에서야 확인한 일이지만 지문 하나로 전 국민의 신원이 튕겨나오는 나라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대한민국'밖에 없다. 일본에도 주민증 비슷한 것이 분명 있지만 전 국민의 지문을 따지는 않는다. 범죄인이나 외국인에 한해서 별도로 관리한다. 그러니 신분증에 지문을 박아가지고 다니는 나라도 우리뿐인 셈이다. 

이런 걸 모르고 영화를 본 한국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내용이 오히려 이해가 안 가야 정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사무소에서 채취한 전국민의 지문정보는 경찰청 지문계에 취합되어 지문의 형태에 따라 고유의 넘버링이 되어 관리된다. 전 국민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여 관리되고 있는 이 나라의 기술력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자괴감을 느껴야 할지?

영화 한 편도 세계 공통의 감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이 나라의 '인권'이 조금은 한심하다.

※ 사족 -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영화를 보고서도 영화의 내용이 모두 이해가 된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무신경이 존경스럽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4.5.3.
 
이 영화를 시작으로 원작이되었던 소설, 정확히는 <백야행>으로 이미 익숙한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몇 권 더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3년 3월을 기점으로 100권의 작품과 일본 내 1억 부 판매를 기록했고 국내에도 지명도가 있는 몇 안 되는 유명작가라 내가 몇 권 더 읽은들 특이할 것은 없겠지만 접하는 책마다 한마디로 술술 넘어간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경우 본격 추리소설이라 보기 어렵지만 나머지 추리물들의 경우 비교적 명쾌한 결말-적어도 심리적 동인 정도는 충분히 설명해 준다-이 있어서 '무라카미 하루키' 처럼 읽고 나서도 내내 입맛이 개운하지 않은 그런 느낌은 없다. <천공의 벌>과 같은 경우 그 두께가 성경책만큼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스릴을 느끼며 완독 했다.
 
읽고 나면 다 기억은 못해도 이렇게 가끔은 소환될 소재가 되긴 하는데 잡지류를 빼고 최근 종이로 된 책을 읽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사두었던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절반쯤 읽다 덮어 둔 것이 마지막이니 족히 몇 달은 지났나 보다.
 
하는 일 없이 요즘 뭔가 '완성'을 못하고 흐지부지 손을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한 갈급함이 없어서거나 그렇게까지 치열할 이유가 없어졌거나 대개 둘 중 하나겠지. 뭐 아쉬움은 있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평생 게으르다 소리 듣지 않을 만큼은 살았으니 성격상 뭔가 또 관심이 생기거나 집중할 다른 일이 있어서 일 테니 공연한 나태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눈에서 멀어지지 않게 읽다만 책들도 근처에 두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아내에게 청소 유통기간을 좀 늘려달라 해야 하나?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