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딸, 하나님의 은혜에게

[2005.2.11] 함께 커가는 집 - 산들 어린이집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1. 9.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네가 산들어린이집에 등원한 지도 벌써 3개월 정도가 지났구나. 지나칠 정도로 엄마와 떨어지는 걸 겁을 내고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질 못하는 데다 지역에 있는 일반 어린이집 교사들에 대한 실망들이 결국 공동육아라는 대안을 선택하게 한 것이지만 하은이 너의 시각으로 보자면 참 현명한 판단이지 싶다.

 

처음 산들에 찾아갔을 때 아빠는 적잖이 실망했다. 주위의 깨끗하고 현대식의 어린이집을 상상하다가 막상 찾아간 곳의 허름함이란! 정말 이런 곳에 아이들을 맡기어도 되나 할 정도였다. 허름한 폐건자재가 뒹굴거리는 마당, 여기저기 임시로 땜질해 놓은 가건물과 계획성 없이 구별해 놓았을 크고 작은 방들과 아이들이 지내기엔 부적합해 보이는 나무계단들. 한여름과 한겨울을 나기에는 너무나 열악해 보이는 냉난방시설, 게다가 비명소리가 나올 것 같은 조합 가입비용들. 게다가 엄마 아빠가 수시로 불려 가 참여해야 하는 운영 시스템..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 아빠들이 직접 집을 마련하고 운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네 엄마를 안심시키기 충분한 것이어서 더 이상의 난색을 표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사실 이곳을 보고 이사를 감행한 것이라 달리 다른 대안도 없었지만^^

 

담임을 맡은 '꽃게'를 엄마 이상 잘 따르는 것을 보면서 이전의 삼성어린이집에서의 충격은 이제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슬슬 집에 안 갈 궁리를 하는 널 보면서 참 대견히도 빨리 적응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안심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곳의 열악함을 핑계하기보다는 너무 늦게 이곳으로 온 것이 네게 미안할 정도이다. 산들에서의 엄마 아빠는 너와 네 추억과 함께 커가며 뒤늦은 성장을 즐겨볼 생각이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3.11.9

 

사실 공동육아를 감행하긴 너무 늦은 시기였다. 초등학교 입학까지는 불과 남은 시간이 2년뿐이었고 그렇다고 이곳이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예비학교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생태탐방이나 민속놀이 같은 체험 놀이활동 중심이다 보니 통상적으로 기대하게 될 기능적인 의미의 유치원 학습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이후도 계속 대안교육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의 향후 공교육 적응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미 아이들도 그 부모들도 더 어려서부터 더 오래전부터 공고히 만들어진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후속멤버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낯가림이 심한 우리들에게 적절한 상황도 아니었고,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가며 이사하는 마당에 높은 조합 가입비용 마저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인생 중 되돌려 경험하지 못할 특별한 시간들을 보내고 만났고 투자했다.

그사이 아이는 건강히 자랐고 적응했고 바르게 성장했으니 그걸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역시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를 키워낸다.


 

⬇️ ❤️ 아래 공감하트 하나 눌러주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