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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딸, 하나님의 은혜에게

처음 우리에게 오던 날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1. 7.

사랑하는 딸 하은에게.

 

네가 처음 엄마 몸속에 작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을 안 날. 그날의 아빠의 모습은 마치 몇 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어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의 모습이었다.

 

부리나케 산부인과로 엄마의 손을 이끌고 가던 아빠의 모습을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잊지 못할 떨림과 설레임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네 엄마와 함께한 것이다. 기억력이 그리 명석치 않은 아빠의 기억으론 결혼식 날 네 엄마의 손을 잡고 단상에 섰던 날 이후로 최고로 흥분되고 기분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여느 아빠들이 다 그럴테지만 이 세상에서 또 한 명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그 많은 아빠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가정의 진정한 가장이 된다는 것, 자신의 분신을 자신의 힘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단순의 밥 먹여 키우는 사육의 그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대단한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한 가치 있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있는지도 모르고 감기약을 먹어서 걱정이 가득한 엄마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저 아빠는 기쁨을 억누르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추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아직 아기집이 잘 자리 잡히지 않았다는 의사분의 말씀이 내내 걸리기는 했지만 손에 쥔 초음파사진 속의 콩알만 한 네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을 믿기에 그리 걱정하진 않았다. 다음 주부터는 비디오테이프에 네 모습을 하나하나 담을 생각만 하며 즐거워했던 그날을 생각해 보면 정말 행복한 기억이다.

 

늘 그랬지만 그 날따라 네 엄마는 왜 이리 예뻐 보이고 혹이나 아플까 힘들까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혹 네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속 보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날 이후로 그토록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열심히 했던 날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늘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던 단조로운 일상가운데 네가 우리에게 왔다는 그 소식만으로도 그 기쁨이 되고 은혜가 되는 날이었고 남은 열 달을 어떻게 준비하며 널 기다려야할지 벌써부터 분주함이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어느 것부터 준비하고 무엇을 사 두어야 하는지 경험이 없는 엄마 아빠로서는 제일 먼저 책을 하나 사서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네가 이 땅에 무사히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비롯하여 주위 분들의 축하를 받기에 버거운 하루하루를 우리에게 준 하나님께 참 많이도 감사했던 때였던 같다. 또 한 턱 내라는 친구들의 강권함을 뿌리치기가 몹시도 곤혹스러웠던 때이기도 했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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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1.7

 

글 속에 등장한 아이의 초음파 영상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는 얼마 가지 않아 잃어 버렸다.

내 결혼식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아이의 유아기 시절이 담긴 추억들도 함께.

 

포장이사를 부탁했던 분들이 짐을 싸면서 비디오 테이프들이 담겨있었던 선반만이 아닌 내용물까지 대형폐기물로 내어버린 탓이다.  너무나 쉽게 그들을 용서해버린 자신이 밉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손해배상이라는 이름으로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아직 그때의 기억들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명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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