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몇 번째 결혼기념일인지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도 부족해서 열 발가락을 추가하는 정도가 되었지만 그 사이 좀 변한 게 있다면 이제는 딸아이가 모은 용돈으로 영화도 보여주고 점심도 사고 케이크에 불도 켜주는 오히려 '챙김'을 받는 날이 되었다는 것 정도?
딸아이가 보여준 영화는 '건축학 개론'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지 15년 만에, 이제는 건축 디자이너가 된 엄태웅에게 갑자기 첫사랑의 여자(한가인)가 나타나 그녀의 집을 한 채 새로 지어준다는 밋밋한 구조의 줄거리지만 관객들에게 첫사랑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하나씩 갖고 있을 그에 관련한 애틋한 추억과 오래된 애잔함이 스멀스멀 떠오르게 하는 영화이다.
'첫사랑'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인 나로서는^^ 결혼기념일에 보기에 안성맞춤의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영화의 감동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에 오랫동안 접어 놓았던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에 오히려 긴 여운이 있다.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기용된 미쓰A의 '배수지'도 썩 잘 된 캐스팅이며 96년도의 엄태웅 역할을 한 '이제훈'의 연기도 제법이다. 하지만 요즘은 늘 성인역할 배우들이 문제이다.ㅠ
배수지의 성인 배역인 한가인의 느낌없는 연기도 그렇지만 이제훈의 15년 후를 연기한 '엄태웅'은 일단 얼굴부터가 연결이 잘 안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차라리 외모나 배역의 성격 역시도 싱크로율이 높은 '박해일'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을 텐데. 나만의 생각이겠지?
아무튼 영화 외적인(?) 감동이 오래가는 영화로 볼만하다. 내 점수는 별 세 개 반.
※ 사족1 - 96년 배경치고는 너무 오래된 그림처럼 만들었다. 마치 88년도를 보는 느낌. 턴테이블이 있는 집에 CD플레이어 하나가 없다는 설정도 무리가 있다. 당시엔 벌써 턴테이블 보기가 요즘보다 더 귀했던 시절이었다. CD의 전성시대. 그리고 제주도의 집은 너무 날림으로 만든 것 아닌가? 겨울에 춥겠더라....
※ 사족2 - 이 영화에서 건진 또 하나라면, 친구 납뜩이역 조정석이란 배우의 발견이다. 이 영화에서 '재미'라는 측면의 80%는 이 친구 몫이다.
※ 사족3 - 제주도로 포터블 CDP 택배 보내면서 뽁뽁이도 하나 안 넣고 포장해서 보냄. 나라면 신문지라도 넣었을 텐데...... 그리고 상자에 송장도 안 붙어 있음. (아.. 영화를 너무 비판적으로 봤구나ㅠ)
※ 사족4 - 한가인이 찾아온 이유를 끝까지 모르겠음. 의사와 결혼하고 이혼하고 위자료 잘 챙겨서 첫사랑 앞에 나타난 의도는? 젊은 여자랑 결혼하려고 하는 첫사랑의 파투를 기대한 것인가? - 다행히 막장스러운 반전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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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5.22.
나의 결혼기념일을 헤아리는 데는 이제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외의 남의 손도 필요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억에 있고 가끔은 매스컴에서도 언급이 되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수작이었던 모양이다. 짠돌이 마냥 평점을 세 개 반을 주었었는데 네 개는 주어도 될 듯싶다.
당시엔 밉상 캐릭터라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배역 중 유연석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납뜩이와 함께 호화 캐스팅이었다. 죄다 뮤지컬 배우이니 배수지와 함께 노래 좀 한다는 친구들을 적극 기용한 셈이다.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이들이 이제는 전부 중견들이 되어 전성기를 누릴 만큼 성장했다. 이쯤 되면 당시 캐스팅 담당의 안목을 그것을 승인한 감독의 눈썰미를 다시 보게 한다. 허다한 종목을 골라 투자하길 조언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넉넉히 아니 말이다.
역시 인생은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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