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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대한민국 MZ의 새로운 레트로 언어, 전통시장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2. 11.

오늘은 2023.12.11.
 
오늘은 식상한 카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압축성장과 초과근로, 야근과 그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심야 술문화.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이다. 그사이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각성된 근무시간을 보내려면 커피가 필수다. 집집마다 제 나름의 커피 머신으로 홈카페를 꾸리는 것도 유행이 되었고 나 역시 홈 바리스타로서 브레빌 920을 운영 중이다.
 
그러니 이 좁다란 나라에 겨우 이 정도의 인구에도 그 엄청난 커피 소모량과 카페의 숫자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약간은 허세스러운 자기 과시의 카페문화와 퇴직의 길에 떠밀려 기승전 취킨집의 대안으로 시작한 비자발적 카페 창업의 붐이 함께  버무려져 이에 거들었다. 

2007년 방문했던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 예전 심벌과 로고를 그대로 사용 중이다.

이탈리아를 가본 적 없으니 그나마 내가 경험한 커피 천국은 스타벅스의 본적지 시애틀이었는데 우리나라 카페의 기세는 가볍게 그곳들의 싸다구를 날린다.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최근 10년의 카페 트렌드는 모든 것이 그렇듯 엄청난 규모의 기업형 직영 카페들의 등장이다. 테라로사, 9Block 등으로 대변되는 그런류다.  주로 외곽에 독특한 개성의 건물을 올려 자신만의 세를 과시하는 식인데 비슷한 콘셉트가 이어지다 보니 최근엔 아예 폐공장 등을 인수해 개조해서 규모와 독특한 스타일을 더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다.  공장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강화도의 조양방직 카페, 인천의 코스모40,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고가구점 발로, 성수동 어니언 등을 포함해 공장 개조형 카페가 수십 군데에 이른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공장개조 카페 BEST 10

[BY 여행이좋아] 이런 인테리어 실화냐? 많고 많은 이색 카페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공장 또는 창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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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고가구카페 발로에서 찍은 나의 콘셉트 똥폼 사진ㅎ

주로 버려진 공장에 카페와 레트로라는 새로운 유행이 붙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인데 실제 가 보면 여전히 카페 주변은 공장지대 한가운데이거나 이미 나름의 방향으로 변해버린 주변 상가들과는 제법 거리를 두고 만들어져서 이질적이다. -물론 그 이질감을 즐기는 거다.
 
"어라? 여기에 이런 곳이 있네!"
공장형 카페들이 인적이 없던 망한 그곳에 생겨 무언가 이질감을 주었다면 조금 다른 느낌의 진화가 또 진행형이다.  폐공장과는 달리 늘 인파가 붐비던 곳에 다른 용도의 무언가가 생길 때 느끼는 '신선함으로의 이질감'이다. 바로 전통시장의 재조명이다.
 
마약김밥으로 이미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지가 되었고 바가지로 한편 욕을 먹고 있기도 한 서울 광장시장을 아이콘으로 지역마다 전통시장의 리노베이션이 한창이다.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이미지를 벗고 잘 갖춰진 주차장과 지역 특산품과 명물 음식들을 라이업으로 코로나 이후 가는 곳마다 인파가 어마하다. 뭐 여기까지는 기존 전통시장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어 특이점이 없는데 문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공간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드디어 레트로의 새로운 한 축을 쌓고 있다.

생활디자인 소품업체 플리츠마마(PLEATS MAMA)가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이웃' 광장점을 바로 이곳 전통시장 광장시장에 9월 문을 열었다. 그나마 이곳은 소품 판매점이 주는 이미지가 시장과 맞닿아 있어 이질감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같은 광장시장의 팝업스토어-그 쉬운 '노점'을 요즘 애들은 이렇게 어렵사리 부른다ㅎ- '제주위트 시장-바'에 이르게 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제주 특산 위트 에일 맥주와 광장시장 길거리 음식이 콜라보된 시장카세(시장+오마카세)의 그 힙함은 왜 하필 광장시장이어야 하는가? 하는 스스로의 질문을 삭힐 수 있다.
 
"어라? 여기에 이런 곳이 있네!" 

스타벅스 경동1960점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사진. 아내의 닉 '지니'가 콜되고 있다.

다른 전통시장으로 눈을 돌리자. 좁은 시장길을 좀 헤매다 계단을 올라선다. 1960년에 문을 연 제기동 경동시장의 이름과 역사를 따서 작년 문을 연 '스타벅스 경동 1960점'. 과거 경동극장의 내부 골조와 좌석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기존 스타벅스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가온다. 공간이 크다 보니 주문고객의 이름이나 번호를 소리 질러 부르는 스타벅스의 전통에서 벗어나 벽면을 스크린 삼아 고객을 콜 한다. 극장이란 콘셉트를 살린 것이기도 하다.
 
또 최근 이곳 경동시장에 이벤트 전시 공간인 '더 윌로(The Willow)'가 지난 8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The Willow — studio-eccentric

더 윌로 (The Willow) 제기동 청량리 경동시장에 위치한 더 윌로 (The Willow)는 공간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익센트릭...

studio-eccentric.com

시장보다도 먼저 1955년에 들어선 사료창고 2층을 개조한 것으로 여전히 청과물과 생선냄새가 가득한 경동시장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구색으로 그들의 콘셉트인 믹스 앤 매치(Mix & Match)를 소구하고 있다.
 
전통시장.
 
망한 공장처럼 이미 없어진 곳이 아니다.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으로 조금 밀리고 외면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네 서민들의 애환을 녹이고 있는 전통시장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나름의 방정식으로 생존하고 있었다. 그곳에 레트로가 새로운 언어가 된 MZ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니 본래의 쓰임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붙어 도리어 이것저것이 섞여 돌아가는 '시장통' 본질을 더 강화하는 일종의 패치워크가 작동 중인 것이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배웠다.
차이점을 의미하는 '다른 것'과 옳지 않고 그른 것을 말하는 '틀린 것'은 확실히 구별해야 했다.
 
경동시장 안의 '스타벅스'나 '더 윌로'는 적어도 이제껏 틀린 것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어울리지 않으니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틀린 것이 언젠가는 다른 것 정도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이젠 그렇게 배워야 살아남는 시대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다. 나쁜 개가 없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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