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12.18.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토막버전을 자주 봐서 그런지 굳이 국뽕이 차오르고 싶은 경우가 아닌데도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에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들의 한국여행 브이로그가 자주 추천된다. 한국음식을 잘 먹고 한국말을 써보려고 노력하며 그리 고가는 아니어도 한국상품을 제법 구매하는 모습에서 절로 흐뭇해지는데 대개는 일본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손쉽게 일본여행에 접근하듯 그들도 비슷한가 보다. 그런데 몇 개 돌려보면 특이점이 있는데 등장인물이 바뀔 뿐 판에 박힌 듯 방문하는 곳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여의도 '더 현대'가 양념으로 첨가되지만 주로 닭 한 마리 집과 명동교자를 시작으로 '어니언' 같은 카페 몇 군데를 순례하고 압구정동 패션 편집샵에서 옷가지 몇 개를 구입한 후 '육전식당' 같은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삼겹살을 먹고 동대문 '뉴뉴'의 액세서리와 '올리브영' 쇼핑으로 끝나는 레퍼토리이다. 의외로 경복궁 이런 곳은 오히려 드물게 등장한다.
특히 여성 여행자인 경우 몇몇 카페와 패션 아이템과 화장품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등장해서 식상할 지경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선글라스 같은 아이웨어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와 그의 하위 브랜드쯤 되는 '탬버린즈'가 그것이다. 한 건물에 있다 보니 이 둘은 콤보로 100% 등장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지현을 시작으로 했던 스타마케팅과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여러 상품/마케팅 아이디어로 힙함과 트렌디의 아이콘으로 짧은 시간에 자리매김함 젠틀몬스터는 향수에는 '탬버린즈', 디저트의 '누데이크' 같은 다소 이질적 이종조합의 P&B 브랜드를 거느리게 됐다.
그중 '탬버린즈(Tamburins)'
향수와 캔들 같은 향 관련 소품이나 핸드크림 등 기초 화장품류가 주력이다. 블랙핑크의 제니를 메인 모델로 해서 그나마 접근성 높은 소품류에 고급감을 끼얹은 포지셔닝으로 그리 큰 부담 없이도 명품을 구입하는 듯한 만족감을 주는 자리에 이르렀다.
압구정동에 위치한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 신사의 경우 자체를 갤러리화 했고 방문 자체만으로도 문화적 효용감을 줬다. 특히 생뚱맞은 '움직이는' 실물 사이즈 말인형은 그들이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소재의 향수라는 것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곤 하지만 설득당하기 쉽지 않다. 눈을 껌뻑이며 머리와 꼬리를 흔드는데 징그러울 지경이다.
지날 달 신사점에 이어 핫플 성수동에 탬버린즈의 두 번째 플레그십 스토어가 오픈했다.
매장 안을 들어서야 비로소 특이점이 왔던 신사점과는 달리 이곳 성수는 건물 자체가 특이점이다. 뭔가 기이하게 보이지 않으면 어디가 이상해지는 병이라도 걸린 것인지, 이 비싼 땅에 지상에 보이는 건물이라곤 만들다 만 것 같은 3층 뼈대 밖에 없다. 1층 뼈대(?) 주변에 유리를 두르고 매장인 지하 공간을 동물원 우리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다.
물론 매장 안으로 시선을 옮겨 올려다보면 뻥 뚫린 개방감으로 이곳이 썬큰 공간이 되기도 중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를 드러내는 스테이지가 될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적어도 황량한 뼈대의 지상 공간에서 부러움으로 쳐다볼 뭔가 선별된 사람이 된듯한 선민의식이 고양된다.
지하 매장 공간의 뜬금없는 노부부 마네킹은 신사점의 말인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모기업 젠틀몬스터 안경을 쓴 멋쟁이 할아버지가 탬버린즈의 립밤을 할머니에게 발라주는 모양인데 이를 해석하기도 만만치 않다.
세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자 했을까? 젊은애들만 빠글빠글한 성수라 이 역시 설득당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다 늙어선 이러고 다녀도 테가 안 난다는 협박같이 들리는 듯하다.
뼈대 건물과는 달리 흰색으로 잘 정돈된 매장, 노인 한 명 없는 매장의 노인 마네킹, 상품과는 구색이 동떨어진 인테리어 소품들.
죄다 조화나 어울림보다는 '대비'가 가득하다. 성수가 모두 핫플이지만 그들의 민낯은 모두 그저 지상에 드러난 뼈대에 불과하고 진정한 트렌디의 정수는 숨겨진 탬버린즈 자신들 뿐이라 웅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겉이 세상 화려한, 길 건너 성수 '디올'의 맞은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금빛 휘황찬란한 디올은 대비를 위한 신의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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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2.20.
군데군데 눈이 남은 길을 달려 출근해 보니 책상에 누군가 선물 하나를 놓고 갔다.
바로 탬버린즈.
관련 글을 올린지 며칠 안 되어 연관된 센스있는 선물이라 구독자 산타라도 다녀간 것인가?
크리스마스까진 아직 좀 남았으니 산타는 아니고 이번에 다른 팀으로 발령 난 여직원이 송별 선물로 장문의 카드와 함께 두고 갔다. 차장 시절 코찔찔이 신입 여직원으로 만나 팀장일 때 내 부서원으로 오래 있었고 옆자리 동료와 결혼하는 걸 지켜봤으며, 이제는 나와 같은 팀원으로 근무하다 발령이 났으니 얼추 내 회사생활의 1/3을 지근거리에서 같이한 친구다.
이왕 다음 스탭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나서는 길이니 그 길이 너무 춥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도 미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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