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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8.3.20]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by 오늘의 알라딘 2023. 12. 20.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기에 앞서 좋은 연주의 최고 덕목은 듣고 아름답다-혹은 '좋다' 정도라도-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이가 불쾌하게 느끼거나 작곡가의 영감에 그리 동의하지 못한다면, 작곡가나 연주자의 노고와 상관없이 일단은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는 그 음악을 즐기는 것과는 별개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트로트 음악을 전혀 듣지 않는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설이나 추석 특집에 할 수 없이(?) 듣게 되는 장윤정-예전에는 주현미-의 노래를 듣자면 참 노래를 잘하는구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된다.  적어도 연주의 덕목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천한 클래식 감상의 경력으로 인해 필수라고 추천된 레퍼토리를 수집하고 질서 없이 감상을 하다 보면, 바로 이런 덕목이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연주를 만나게 된다. 본전 생각에 나중에는 결국 한 번 다시 듣게 되겠지만 처음에는 채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CDP트레이에서 내려지는 CD가 그런 것이다.   

힐러리 한은 러시아에서 수학한 79년생의 미국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다.  나이에 비해선 벌써 여러 굵직한 상과 꽤 많은 신보를 내고 있고 아마도 율리아 피셔와 함께 차세대 거장의 재목으로 지목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DG를 통해 출시된 그녀의 최근 앨범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이 바로 그런 덕목(?)이 없는 경우이다.

 
앨범 전면에 "가장 대중적인 로맨틱 콘체르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 레퍼토리로도 꼽히는 쇤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의 앨범으로 엮어내다" 라고 스티커로 붙은 경고문(?)을 조심했어야 했다. 게다가 가장 대중적이라는 말 역시 사실과는 달랐다. 

물론 음반의 녹음 상태나 그녀의 연주실력을 뭐라할 위치는 아니나, 뭘 열심히 연주는 하는데 그리 즐겁지 않으니 조용히 CD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가끔-정말 가끔-현지인에 의해 요리된 정통 인도식이나 태국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참을 수 없는 역함을 경험하게 되는데 음악적으로 비위가 약한 체질은 어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덕분에 들인지 하루밖에 안 된 스피커에 공연한 투정을 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하지만, 힐러리의 측면 흑백사진이 담긴 앨범커버나 오렌지컬러로 디자인된 CD는 호감이 간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3.12.20.
 
1. 어릴적 본 아버지는 왜 9시 뉴스의 정치뉴스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쓰디쓴 한방차는 도대체 왜 마시는 건가 했는데 지금은 내가 다 그러고 있다. 나이 탓이다.
 
2. 지금도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순식간에 쏟아내는 영어의 리스닝은 전혀 안 되지만 어느 순간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최소한의 말은 전달할 수 있겠다는 공연한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시제와 5 형식 그리고 Be동사와 일반동사의 개념이 책이 아니라 느낌(?)으로 이해가 된 순간이었다. 야나두 덕이다.
 
3. 전혀 못 먹던 아니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던 식재료 중 하나가 '고수'였다. 비누를 씹을 때 날 것 같은 향이 도대체 음식에서 나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평생을 그리 살았고 동남아 여행을 가서도 반드시 빼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직원들과 점심으로 쌀국숫집에 들렀다가 미친 듯 먹어치우는 후배의 권유에 따라 억지로 몇 젓가락 시도해 본 건데 그날 바로 방언처럼 입이 트였다. 후배의 강권 때문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평소엔 잘 못하던가 심지어 싫어하던 것이 어느 극적이고 우연한 순간을 만나 잘하게 되거나 좋아하는 쪽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노력에 의한 기술 향상일 수도 있고 취향의 변경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저절로 관심분야가 바뀌는 바람에 그리된 경우도 있다.
 
브레이크 쓰루 (Break-Through).
보통 어떤 임계한도로 여기는 포인트를 관통해 낼 때 쓰는 말이다. 그다음의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성장이 되기도 하고 또다른 목표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악 듣기엔 왜 그런 것이 안 통하는 건지. 보통 현대음악이라 부르는 불협화음이 난무하고 도대체 주 멜로디가 무엇인지 꺼내 읽기 힘든 음악엔 도대체 취향이 바뀌질 않는다. 물론 그럴만한 기회도, 연습도 없었고 취향이 바뀔만한 시간도 흐르지 않았음을 자수한다. 게다가 바뀌길 희망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이제 음반을 사서 듣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우연히 집었다 당하는 낭패는 면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겐 현대를 살면서 현대음악이란 이름이 붙은 것들과는 아마 앞으로도 교분이 생길 일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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