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귀가 높아져서인지 몰라도 구입 후 선뜻 마음에 차는 CD가 적다. 온라인 리뷰나 추천 음반 중에서 선택을 하다 보니 그들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이유다. 하지만, 교보문고 핫트랙 자체의 추천에 의해 집어든 이번 앨범은 사뭇 마음에 든다.
Eight Seasons. 말 그대로 8계절이라는 앨범 타이틀이 말해주듯 '비발디'의 4계와 현대 남미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4계'가 계절별로 묶여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너무나 익숙하여 식상하기까지 한 '비발디의 4계'. 게다가 1악장의 첫 선율은 지겹기까지 한 음악이지만 기돈 크레머의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바이올린은 이무지치의 연주에 익숙해져 버린 귀를 일순간에 환기시켜 준다. 계절별로 3악장씩 묶여있는 비발디의 계절이 끝나면 '피아졸라'가 노래한 부에노스아이레스 계절이 이어지면서 각기 다른 시대의 각기 다른 지역을 노래한 8계절을 즐길 수 있다.
음악적으로 너무가 차별적인 곡들이 섞여있는 부분은 듣는 이를 다소 부담스럽게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 또한 나처럼 현대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교가 과하여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기괴(?)한 탱고풍의 선율들 사이로 문뜩문뜩 이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아직은 낯선 피아졸라를 다시 한번 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한다. 무릎을 칠만한 정말 아름다운 멜로디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있다.
'크레메라타 발티카 오케스트라'라는 생소한 연주단체가 생경스럽기는 하나 발트해 제국에서 모인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연주답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밝은 감이 있지만, 힘 있게 때로는 부드러움으로 계절들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 여느 연주에서 보다 감동이 더하다.
무엇보다도 녹음 상태가 좋아 현을 잘 살려내는 스피커를 사용한다면 상큼한 바이올린의 고역과 기분 좋은 활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공기감을 즐길 수 있다.
독특한 디지팩 구성이 소장의 가치 또한 보장한다. 강력추천.
[글 더하기]
오늘은 2023.12.27.
한동안 자주 꺼내 들었던 음반이다. 대개 클래식에 입문하게 되면 통과의례처럼 시작하게 되는 레퍼토리 중 비발디의 4계는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연히 피아졸라의 4계를 마주하게 된다.
대중가요에서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가끔은 나타나지만 이왕이면 애써 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한데 피아졸라의 4계는 단악장으로 발표된 최초의 의도와는 달리 러시아 작곡가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Leonid Desyatnikov)에 의해 의도적으로 비발디의 그것처럼 보이도록 악장구성과 바이올린 솔로 중심의 악기편성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비발디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뭐 일종의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오마주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어찌 되었건 원전에 해당하는 비발디의 4계에는 각 계절의 악장마다 작자를 알 수 없는 소네트가 붙어있다. 일종의 곡 해설이고 작곡가의 작곡 의도라 이를 염두에 두고 듣는다면 훨씬 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껏 주로 소리만 들었다면 글과 함께 비발디의 4계를 다시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봄
- 제1악장.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소란을 피운다.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다시 아늑한 봄의 분위기 속에 노래가 시작된다.
- 제2악장. 파란 목장에는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목동들이 졸고 있다. 한가하고 나른한 풍경이다.
- 제3악장. 아름다운 물의 요정이 나타나 양치기가 부르는 피리소리에 맞춰 해맑은 봄 하늘 아래에서 즐겁게 춤춘다
여름
- 제1악장.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타는 듯 뜨거운 태양아랫사람도 양도 모두 지쳐버린다. 느닷없이 북풍이 휘몰아치고 둘레는 불안에 휩싸인다.
- 제2악장. 요란한 더위에 겁을 먹은 양치기들은 어쩔 줄 모르며 시원한 옷을 입으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 제3악장. 하늘을 두쪽으로 가르는 무서운 번갯불. 그 뒤를 우레소리가 따르면 우박이 쏟아진다. 잘 익어가는 곡식이 회초리를 맞은 듯 쓰러진다.
가을
- 제1악장. 농부들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술과 춤 잔치를 벌인다.
- 제2악장. 노래와 춤이 끝난 뒤 시원한 가을밤이 찾아들어 마을사람은 느긋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 제3악장. 이윽고 동이 트면 사냥꾼들이 엽총과 뿔피리를 들고 개를 거느린 채 사냥을 떠나 짐승을 뒤쫓는다.
겨울
- 제1악장.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겨울. 산과 들은 눈으로 뒤덮이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잡아 흔든다.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위가 극심하며 따뜻한 옷을 입으면서 시원한 음식을 먹는다.
- 제2악장. 그러나 집안의 난롯가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밖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 제3악장. 꽁꽁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간다. 미끄러지면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바람이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겨울이다. 그렇지만 겨울은 기쁨을 실어다 준다.
오늘은 비발디의 겨울이 제격이다.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취미하다 가랑이 찢기 > 오디오 음악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4.1] 오디오에 양념을 바꾸다 - 스피커 케이블 교체 (16) | 2023.12.28 |
---|---|
[2008.4.7.] 오늘의 음반 - Grechaninov 수난주간 (Passion Week) (11) | 2023.12.28 |
[2008.3.24] 지난 주말동안의 삽질 - 오디오 재배치 (12) | 2023.12.21 |
[2008.3.20]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 '쇤베르크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1) | 2023.12.20 |
[2008.3.19] 스피커 선수교체 - 모니터오디오 GS-20 (7)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