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마인 르노삼성 SM7에서 언제가부턴가 귀뚜라미 소리가 뒷좌석 쪽에서 난다.
SM7은 닛산 티아나를 베이스로 한 차량이라 엔진부터 시작해서 70%는 닛산의 피가 흐르는 차라고 생각하고 구입한 것인데 국내 조립이 부실한 것인지 가끔 자잘한 문제로 신경을 쓰게 한다.
지난 1월 9일에 예약을 요청했는데 거의 한 달 후인 오늘에야 일정이 잡혀서 도봉사업소에 입고하고 점검을 의뢰했다.
차량 뒤편에서 날 수 있는 소리는 공기청정기 소리와 연료펌프 소리가 전부라고 한다. 결국 연료펌프 소리일 것으로 추정된다. 공기청정기를 완전히 끈 상태에서도 귀뚜라미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내를 통해 입고를 시키고 담당기사와 한참을 통화했는데 결론은 연료펌프의 '교체'가 아닌 단순한 방음 처리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소리 때문에 멀쩡한 펌프를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뒷 좌석 아래부분에 방음패드등을 덧대는 수준에서 방음작업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러마했고, 역시 가끔이긴 했지만 '끼익' 소리가 몹시나서 거슬리는 뒤쪽 브레이크패드의 점검까지 '미친 척'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내 친절한 상담이었으나 속으로 무척 불쾌했다. 그래두 3천만 원이 넘는 차량 뒤편에 귀뚜라미가 산다는데 겨우 방음재를 둘러서 방음처리만 해주겠다니. 이런...ㅠ.ㅠ
몇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역시 친절한 목소리의 담당기사님이다. '연료펌프를 새것으로 교체했고, 브레이크 패드까지 개선된 제품으로 교체했으니 차량을 가져가셔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괘씸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차피 교체해 줄 거면서 뭐 하러 방음처리 어쩌고를 언급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겠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내심 기대 수준이 '방음처리' 정도로 낮아졌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새것으로 교체 해줬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생각이 훨씬 더하다.
역시 뭔가를 해줄 때는 한 번에 흔쾌히 들어주는 것보다는 애간장을 좀 녹인 후에 들어주는 것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연애의 법칙'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조삼모사. 가끔씩 어리석은 원숭이가 되는 것도 기분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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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3.7.
상대에게 얻는 만족이란 결국 기대에 반비례하는 종속변수이다.
그러니 애당초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얼마만큼의 만족은 늘 보장될 텐데 기대란 것은 늘 그간에 들인 비용과 노력을 포장해 아우르는 말이라 쉽게 지워낼 수가 없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응?"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어머니들의 대사이다. 건강히 잘 커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겨야 할 텐데 위에 말한 수고와 투자를 버무려 기대를 갖고 있으니 쉽게 만족이 될 리 없다.
아내는 내게 가끔 지독한 비관주의자라고 평한다. 늘 안 될 이유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입방정을 떠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것인데 사실 그간 학습된 '기대치를 낮추는 습관'을 모르는 이유일 거다. 나라고 왜 좋은 게 좋은 거고 잘되길 바라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기대와 희망의 문 뒤편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실망을 그나마 담담히 마주하려면 그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그래서 전혀 쌩판 모르는 운전자들에게는 쌍욕을 하며 화를 내지만 정작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지인들에게는 큰 실망이나 배신감에 치를 떨거나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이 분노하며 화를 내지 않아서 때로는 "그럴 때는 사람이 좋네?" 하는 비아냥을 듣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이미 그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한참은 꼬깃하게 접어놨기 때문이다.
특공대를 뜻하는 일본어 독고다이(特攻隊)가 언제부터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 혼자 다니는 사람의 뜻으로 대중에게 쓰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결국 인생은 독고다이다.
형편과 필요에 따라 할 수 없이 집단과 조직을 이루며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를 지키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결국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 그래서 모든 상황이 크게 불편하지 않는 것. 이게 진정한 낙관주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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