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4.1.
책을 좋아했는데 책을 쉽게 사 볼 형편이 안 되다 보니 학교 다닐 때는 문고판을 많이 봤다. 표지 디자인도 없고 제목이랑 지은이만 덩그러니 있는 갱지로 된 손바닥만 한 '삼중당문고'나 '을유문고'가 유명했다. 이런 문고판으로 이광수, 황순원, 김동인 같은 교과서 주요 등장 작가들의 단편들을 섭렵했다.
그중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는 <소나기> 같은 서정적 주제와는 전혀 다른 쪽에서 작가를 달리볼 넓은 스팩트럼을 알려준 데다 크리스천으로서 두고두고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들어 줬다.
또 하나 생각나는 그의 다른 소설은 <독 짓는 늙은이>가 있다.
송 영감은 어린 아내가 자신의 조수와 바람이 나 도망가자 남겨진 아이와 힘겹게 독을 지어가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기력이 쇠해 자신이 만든 독은 망가지고 제자의 독은 멀쩡하게 구워지는 걸 보고 자신의 죽음이 머지 않음을 느낀다. 그 후, 송 영감은 방물장수 할머니에게 아들 당손이를 맡긴 후 가마 속에 들어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세줄로 요약해 본 <독 짓는 늙은이>의 줄거리다. 독이 완성되어 나오는 '수율'이 예전과 다름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가마에 들어가 스스로 독이 되길 선택한 송 영감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늙은이가 몇 살로 나오는지까지는 기억에 없지만 최근 나는 지난 한 두 해가 예년과 특히 다르다. 꿈을 많이 꾼다. 미래 비전을 의미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잠잘 때 꾸는 꿈'이 많아졌다. 유난히. 수면의 질이 안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상과학적이거나 황당무계하지도 않고 나름의 치밀한 기승전결이 있는 데다 제법 구조적 스토리까지 있다. 대부분 회사와 업무를 소재로 전개되는데 물론 깨고 나서는 쉬 기억이 소멸해 버리지만 일어나 샤워하는 동안까지 내내 꿈의 잔상 속에서 현실과 혼동하기도 한다.
굳이 독 짓는 '늙은이'와 줄을 그어 연결한 필요는 없겠지만 다 늙어서(?) 왜 이런지 모르겠다. 잠을 자도 푹 잤다는 느낌이 없으니 피부의 질도 같이 안 좋아진다. 뭐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굳이 이렇게 엉뚱한 내용의 꿈으로 정신사나울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독 대신 '꿈' 짓는 늙은이가 되고 있다. 소설과는 반대로 꿈의 수율이 좋아지고 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른 늙은이(?)들의 경험을 들을 일이 없으니 진행 방향을 알 수가 없네.ㅎ
하긴. 뭐라도 짓는 건 늘 생산적이다. 그걸로 위안을 삼자.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남자의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뭐라? 버거킹에서 와퍼를 없앤다고라??? -그후 결말 (20) | 2024.04.15 |
---|---|
[2009.4.24] 아내와의 색다른 점심 (16) | 2024.04.11 |
[2009.4.2] 싸게 먹을려다 당했다. (16) | 2024.04.01 |
[2009.3.23] 맘에 꼭든 정통 아메리칸 - Brooks Brothers (22) | 2024.03.29 |
[긴급] 갤럭시 S23 ONE UI 6.1 업글 올라왔습니다. (16) | 2024.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