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멀다 하고 집에 바꿈질 '선수'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모자라서 오늘은 와이프까지 샵으로 끌고 가서 기어코 점찍어 둔 '놈'으로-등치로 보나 스케일로 보나 도저히 '년'소리는 안 나온다.- 스피커를 바꿔 왔다.
후배 결혼식 때문에 함께 나선 것이긴 했지만 이번 바꿈질만큼은 '공범'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탄노이 캔터베리 canterbury 15'
탄노이 프리스티지 라인업 중 '웨스트민스터 로열' 다음 정도에 위치하는 대형기에다가 이제껏 내가 바꿔 왔던 스피커와는 여러모로 가는 길이 다른 스피커라 아내의 '묵시적'동의가 필요했다. 일단 크기가 다르다. 늘씬 늘씬한 톨보이-오히려 '톨걸 Tall Girl'이라고 불러야 맞을 정도 미려한-스피커 만을 섭렵하다가 가로 68cm에 키는 110cm를 넘는 '쌀통형 궤짝'을 들이려면 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도 안방마님 결재는 받아야 한다.
또한 모르긴 해도 출시 된지 10년은 넘었을 스피커다. 물론 최근에도 SE버전으로 여전히 같은 이름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우퍼 에지도 이미 한 번 갈린, 언제 태어났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녀석이다. 아직 빈티지라고 부르기는 심하지만 '고물'을 집에 들이기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소리 어때?"
연식에 비해 큰 상처 없는 외관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아내의 강제적인 동의를 확보했다. 사실 탄노이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 중후장대 한 크기며 고풍스러움에 고급 고가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앤틱 한 가구를 좋아하는 아내도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다.
잠시지만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던 나의 로망, '크레모나'를 샵으로 시집보내는 것을 끝으로 그간 몇 달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며 분주했던 '삽질'의 1차 완성을 봤다. -처음엔 '끝'이라고 썼다가 고쳐 쓴다. 오디오쟁이에게 끝이 어디 있겠는가?
파워가 마음에 들면 프리와 잘 안 맞고, 앰프가 마음에 들면 스피커가 안 맞고, 도저히 답을 내리기 어려웠던 시간들이다.
도망치듯 앰프를 Tone의 Pantheon으로 낙점하고 나니 이제야 길이 보인다. KT-88 진공관으로 드라이빙하기 적절한 클래식용 스피커는? 탄노이! 물론 그 외에도 많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탄노이로 답안을 써낸다고 해서 이를 오답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답이 보이는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세운상가 샵에서 도착한 '켄터베리'의 자리를 겨우 마련해서 그릴을 벗겨 세팅하고 나니 눈으로 보는 만족스러움이 제법이다. 다른 모델과는 달리 검은색 그릴을 채용한 것도 마음에 들지만 역시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5인치 유니트를 시각적으로 보는 맛이 더욱 크다.
크기로 보자면 30~40평대 아파트에 설치할 수 있는 거의 한계점에 와 있는 스피커이다. (다행히 탄노이가 음향적으로는 많은 물리적 공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슷한 크기의 바로 아래 기종인 'GRF 메모리'가 대중적으로 더욱 선호되고 있으나 디자인이 너무 내 취향과 동떨어져 있다. 또한 가격적인 이유로 탄노이의 입문기로 많이 찾게 되는 '스털링'이나 '턴베리'는 나의 새 진공관 앰프 '판테온'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 결국 앤틱하면서도 부드러운 디자인적 콘셉트가 함께 공존하면서도 탄노이의 현대적 기종과는 달리 전통을 잃지 않은 스피커. '캔터베리 15'로 낙점한 이유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15인치에 달하는 탄노이 특유의 동축형 우퍼, 음색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부속되어 있는 금색의 번쩍이는 패널. 혼자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할 무게와 크기. 군데군데 연식이 느껴지는 때 묻은 우퍼와 자잘한 상처들. 늘씬하면서도 컬러풀한 외관과 밝은 음색으로 노래했던 쭉쭉빵빵-빵빵은 좀 아닐 수 있겠다-미녀 '크레모나'와는 달리 세월의 분주함에서 한참을 지나가 있는 중년의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늘 듣던 음반을 중심으로 밤늦도록 '캔터베리'를 울려 봤다.
'이제야 내가 찾는 음색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해상도, 정위감, 분리도 어쩌고 하는 어려운 표현은 갖다 버려라. 그런 건 모르겠다. 편안한 이 음색이 마음에 든다. 능력이 안 되는 노래를 부르려고 어렵게 악을 쓰지 않는다. 짧은 호흡으로 헉헉대지도 않는다.
호방한 아메리칸사운드 계열의 스피커와 대별해서 차분한 브리티쉬 스티커의 대명사인 탄노이가 우리나라에 적어도 나에게 잘 맞는다. 흔히 탄노이는 현악에만 장점이 있다는 말을 한다. 피아노는 장갑 낀 손으로 치는 소리가 난다고 악평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앰프와의 미스 매칭에서 온 일부 오디오 파일의 의견이 아무 비판 없이 수용된 결과리라. '판테온'에 물린 '켄터베리'를 들어 보고 하는 소리인가? - 아님 나만 관대한 것인가?
하루 저녁 들어본 탄노이는 생각처럼 아무 앰프나 맞는 스피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통울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타입이므로 댐핑 능력이 담보된 앰프이어야 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진공관이든 TR이든 간에.
진공관의 경우에는 300B와 같은 3극관에 더 잘 맞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이 역시 소출력 구동을 전제한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제대로 된 5 극관 역시 제외할 이유가 없다. KT-88 EH가 채용된 'Pantheon mk3'의 대편성 소리가 사랑스러운 이유이다. -물론 '캔터베리'의 구입이 앰프의 선택보다 먼저 결정되었다면 300B가 채용된 '클라라'로 구입했겠지^^ 난 귀가 얇으니깐 ㅠ.ㅠ
공연장의 실연을 보고 있다는 과장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오래간만에, 아니 이제껏 사용해 본 스피커로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무대의 열기를 지난밤 경험했다. 뒤편 벽 안쪽으로 낮게 깔린 고즈넉한 저음과 악기의 배음이라는 것이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게다가 피아노면 피아노 보컬이면 보컬, 장르의 구별 없이 편안한 소리로 다가 온다. - 아! 이 부분은 이제껏의 스피커들로는 몰랐던 엄청난 미덕이다.
너무도 편하게 노래하고 있는 파바로티 아저씨도, 베를린 필하모닉도, 노라존스도, 김동률도 정말 마음에 든다. 정말 마음에 든다. 삽질의 1차 완성이라 내가 선언할 만 하다.
그럼 단점은 없냐고? - 왜 없겠어!^^
찾아보면 계속 나오겠지만, 96db에 달하는 '고음압'과 판테온의 '고능률'로 인한 화이트 노이즈가 제법 있다. 스피커의 문제이기보단 앰프 쪽 문제이니 앰프와의 전기적 궁합을 좀 고민을 해 봐야겠다.
또한 분명히 크레모나 보다 고음역이 예리하지 않다. 쭉쭉 뻗어나가는 시원한 바이올린의 보잉을 그려내는데 미숙하다. 조금 답답한 음색. 이건 탄노이의 공통적인 특징일 것이고 그런 이유로 전용 슈퍼 트위터가 따로 출시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역시 엄청난 고가에다가 동축형 유닛을 통해 확보한 정위감을 흩뜨려버릴 가능성이 있어서 보완책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역시 오디오질은 어렵고 재미있다 -_-;;
대편성에서는 중저음부의 강화로 스케일이 장대한 음색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위에 언급한 이유로 악기 간의 레이어가 살아나 보이질 않는다. 한마디로 공간의 디테일을 많이 희생하는 대신 분위기로 압도하는 스피커다.
결국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그래서 팔방미인 스피커는 없다는 말이 바로 이 것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음악다운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할 자신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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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6.18.
지금은 다운사이징되었지만 40평대 아파트에 살 때 이야기다. 제법 큰 거실이라 저런 대형 궤짝을 들여놔 볼만하겠다 싶어 감행한 일이지만 그랬더라도 조금 작은 사이즈의 탄노이였으면 어땠을까?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스피커다.
웨스트민스터까지는 아니었어도 역시 저 정도의 등치의 스피커는 천정이 5미터는 족히 되는 공간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아파트 거실의 특성상 좌우거리는 그런대로 확보했는데 리스너와의 앞뒤거리에 한계가 있다 보니 동축스피커임에도 너무 날것으로 듣는 소리다. 적당한 통울림의 공간감은 그럴싸했는데 한국의 주택에 이걸 제대로 울릴만한 공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어지간해선 엣지 교환할 일이 없는데 우퍼엣지가 교환된 적이 있고 가끔씩 일관성 없는 소리가 나왔는데 배를 갈라보지 않았느나 어딘가 손도 크게 한번 본 것일지도.
뭔가 중고샵의 악성재고를 해결해 준 느낌. 지금은 사라진 과거 세운상가 자리의 샵 주인이 흔쾌히 크레모나와 1:1 교환을 OK 했을 때의 그 표정으로 알아봤어야 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대가 없이 뭔가 제공하는 느낌이 들면 일단 의심해 보자. Trade-off가 공연히 있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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