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노래였더라 '불면증'이란 의학용어 Insomnia를 전 국민이 알게 해 준 그이가?
요 며칠. 집에 들어가기 겁이 날 정도로 열대야가 기승이다. 처음엔 진공관 앰프의 열기 때문인가 했지만 낮 동안 비어 있었던 집에서도 찜질방의 포스가 작렬하니 8월의 열기에 비하면 진공관 몇 알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되겠다.
덕분에 며칠을 불면의 밤으로 보내고 있다. 입 안이 다 헐 정도로 몸도 마음도 피곤한 데다 수면까지 부족하니 낮 동안의 회사 생활 역시 온전할 리 없다. 채 6시간이 안되는 수면용(?) 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열대성 불면증'.
그럼에도 이 '열대야 Insomnia'가 좋을 수도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이 시간 동안 오만가지 공상을 할 수 있다는 것.
- 다음 날 진행해야 할 업무를 미리 그려 보기도 하고
- 내일은 또 어떻게 오디오 시스템을 조정해 볼까 궁리를 해보기도 하고
- 지난 달 다녀온 미국 여행을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 보기도 하다가는
- 어느 순간 생뚱맞은 오토바이 라이더가 되어 분노의 질주를 하다가
- 시큰둥해진 헬스를 머릿속으로만 신나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도 있다.
몸뚱이는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무더위에 녹초인데도 한 줌 가벼운 영혼은 그만큼 제멋대로 상상의 공간을 쉬 거닌다.
사실 아무 목적 없이 이런저런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도대체 없었다. TV를 보든, 책을 읽는 항상 뭔가에 집중해 있었다. 음악을 듣더라도 늘 분석적으로 듣다 보니 쉼의 시간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차원의 치열한 '청각 노동'의 시간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항상 열려있는 귀가 얼마나 연약하고 간사한 기관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조차 특정 관심분야의 잡지를 끼고 앉아 살았으니 '자유로운 사고'란 딴 세상 이야기였다.
오늘 밤도 또 덥단다.
불면의 밤이 고통 스럽겠지만, 뒹굴 뒹굴 시름 잊은 '잡생각'으로 무더위를 비켜 승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조금만 벼텨보면 다족류 벌레들의 잰걸음처럼 어느덧 여름은 저만큼 가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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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7.23.
15년 만에 본문의 글을 보니 휘성의 노래 '인썸니아'가 발표된 지도 그만한 세월이 흘렀단 말이네. 벌써.
당시 에어콘은 아직 컨버터형이 아니어서 사용시간에 비례해 전기요금이 나왔다. 어지간하면 한밤중 열대야는 그냥 견디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자동 불면증 환자가 되어 다들 그렇게 여름을 났다.
서울의 오늘은 여전히 장마의 한가운데이고 고온다습을 몸소 체험하는 전형적인 습식 사우나 날씨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좀 편히 에어컨을 하루종일 돌린다. 미리 시동을 켜 온도를 낮춘 차로 출퇴근을 하고 사무실은 오히려 냉방병을 걱정할 지경이다. 하루종일 건물 밖을 안 나가니 비가 오는지 마는지 신경 안 쓰고 산지도 몇 년이 지났다.
15년 사이에 비로소 느끼는 삶의 개선이다. 그런데도 이노무 인썸니아는 계속이다.
불면보다는 가수면에 가깝지만 온갖 상상의 나래와 뒤죽박죽 스토리가 얽힌 기괴한 꿈들로 늘 숙면이 느낌이 덜하다.
열대야는 시간을 버티면 지나가겠지만 이 불면의 밤은 언제 회복될지. 즐길만한 피할 거리도 없으니. 이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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