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말 IMF가 터지고 실직자가 급증할 때, 덩달아 결혼 계획까지 미루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보던 때가 있었다.
결혼이란 것이 한 두 푼짜리 행사가 아닌 지 오래이니 경제가 어려울 땐 '인륜지대사'라 한들 당해낼 장사가 없었던 것이다.
몇 개를 버렸(?)는데도 책상 위에 앞으로 두어 달의 주말을 통째로 좀 먹을 청첩장이 수북하니, 그런 면에서 보면 내년의 경제 전망은 그다지 나쁘지 않으려나 보다. - 아님 현재의 상황이 이미 호전된 것이거나.
마치 무슨 시합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내색도 안 하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연락을 한다. 그중엔 사내 결혼을 선언한 우리 부서의 밉상도 포함이다.ㅋ
덕분에 내 주머니는 다시 IMF를 맞게 생겼으니, 한동안 안 보이던 녀석이 말끔히 차려입고 나타나면 일단은 '경계'해야 하는 스산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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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0.24.
저 글을 쓴 지 정확히 15년 후인 지난 19일 토요일. 본문에 소개한 15년 전 사내결혼하겠다고 했던 후배 부부가 딸을 데리고 함께 참석한 가운데 드디어 내 딸의 결혼예식이 있었다. 나도 드디어 '경계'해야 하는 대상자가 된 것이다.
IMF가 그리했듯 길었던 3년간의 코로나 시국이 한동안 결혼의 발목을 잡았었는데 좋은 계절이 오자마자 나를 포함해 그야말로 결혼식의 물결이다.
따로 소회의 글을 정리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의 결혼식 문화가 일종의 '부조 산업'이 된 이 상황이 결혼을 준비해 본 혼주입장에서 과연 정상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 내게 결혼식에 와 달라 하는 사람이 있고, 내 결혼식에 와 달라 초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다행하단 생각이다.
30년을 삼성에 근무하면서 이제 내게 남은 인맥이라곤 회사사람들 뿐인데 요즘처럼 만혼이 유행인 시절에 그나마 현직에 있을 때 딸아이를 시집보낼 수 있어서 특히 행운이다. 실로 과분한 관심과 축하 속에 무사히 마쳤으니 이젠 다시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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