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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09.10.26.]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0. 25.

TV를 잘 보는 편이 아니다 보니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하루 한 시간 정도의 뉴스는 봐줘야 한다. 그래야 겨우 지금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아사다 마오가 왜 김연아의 적수가 안 되는지, 코리안시리즈 우승팀 속에 아직도 이종범이 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의 밑바닥 '진짜' 이야기들은 공중파보다는 '3류 저널'인 스포츠 신문 인터넷판을 통해 알게 되는 일이 많다.  

그곳을 통해선 귀로는 믿기 힘든 요지경-이건 너무 이쁜 말이지만 달리 표현이 생각이 안 난다-속 같은 '어지러운' 세상의 '저급한'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1.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끝에 어머니를 독약으로 살해했다는 막걸리 부녀 이야기- 우연이겠지만 이 사건 이후로 막걸리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사실.ㅋ 

2. 야구 방망이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옷장에 매달아 놓고 몇 달을 지냈다는 대학생 이야기.   

3. 조카를 여러 세월 동한 성폭행한 삼촌과 그 사실을 알고도 방조하고 오히려 독려(?)한 외숙모 이야기.

제길슨. 아침부터 입에 담기 더러운 이야기들은 그만 두자.

아무튼 기사화되지 않았다면 세상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범법 犯法'의 이야기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그것은 UFO가 나왔다느니 외계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느니 하는 '별나라 이야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오늘은 월요병을 핑게 삼아 제법 늦잠을 잤다. 이런 날은 별 수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 역시 차가 막힌다.

동네의 삼선교부터 창경궁 앞길까지의 불과 몇 킬로미터는 항상 막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오늘 같은 월요일엔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는 편이 낫다. 가만히 서 있어도 잘도 올라가는 택시 요금  미터기를 보느니 차라리 창 밖으로 분주한 군상들을 구경하는 편을 택했다. 

대부분 쥐색 혹은 멋 없는 비둘기 색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다. 그중에는 교복 치맛단을 멋대로 줄여 입어 멋을 부려 본 녀석들도 있지만 그게 어디 멋이 날 옷이던가? (깔끔하게 입은 교복에 단정히 묶은 머리가 제일 이쁘다는 사실은 왜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지 모르겠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길가의 가게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고 부지런한 공사장 인부들만이 비게들 사이로 아슬한 곡예를 탄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식당 하나.

24시간 해장국집.

혜화동 로타리 스타벅스에서 창경궁 쪽으로 얼마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식당이다.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35분. 이 시간에 문을 연 것을 보니 정말 24시간 영업이 맞나 보다. 큼직한 전골냄비에서 모락거리며 올라온 수증기 때문에 창 틀을 따라 안개가 낀 식당 유리창을 넘어 얼른 헤아려 본 10여 개 남짓의 앉은뱅이 테이블들엔 의외로 손님들이 가득하다.  

이 이른 시간에 아침 식사를 해결하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까? 

제법 젊은 손님들이 많은데 그들의 울긋하게 '단풍'이든 얼굴들을 보니 아침 식사는 아닌가 보다. '참이슬'인지 '처음처럼'인지는 모르겠지만 테이블 위에 볼링핀처럼 서 있는 초록병들이 숫자들을 봐선 이미 식당에 자리를 잡은 지 꽤 오래된 사람들이다.  아마도 대학로 귀퉁이 선술집에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술집 주인의 등쌀에 밀려 이곳까지 피신한 사람들이리라.

다른 쪽 테이블엔 젊은 아가씨 둘이 사람수 만큼의 역시 초록병을 놓고 연신 재미난 이야기가 끝이 없다.

뭐 하는 사람들일까? 모두들 출근하랴 등교하랴 정신이 없는 월요일 이 아침 시간에도 피차 아무 부담 없이 '해장술'을 즐기는 저 치들은?

그러고 보니 세상엔 참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이 많다.

 

여자 남자와 같은 성이나 인종의 구별, 국적이나 종교와 같은 구획으로 나누는 구분, 처음 이야기를 꺼낸 범법이냐 탈법이냐와 같은 '정반 正反'을 나누는 일 말고도 정말 사람 머릿속으로는 그 셈을 끝낼 수 없는 인간사의 변종들이 하늘 아래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허망한가. 인간사라는 거대한 '양탄자'의 심지어 구별되지도 않을 평범한 '한 올'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찌 보면 남들과 유별난 색깔의 한 올이나 '얼룩'으로 사는 사람이 도리어 대단한 이유이겠다. 결국엔 쉬 뽑혀 버릴지 몰라도.


아침 해장술하는 사람들을 보고선 공연히 생각이 깊은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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