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는 돈을 벌러 회사에 다니는 건지 내러 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경조사비가 집행되고 있다.
일전에 블로깅을 통해 수북이 쌓인 청첩장은 한 번 언급했으니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찬 바람이 나면서부터 돌아가시는 분도 제법 생기고 부서에 생일자들도 몰려 있어서 계획에 없던 주머니 돈이 삼베 바지 방귀 빠지듯 사라지는 일이 잦다.
이해 득실을 따져가며 경조사를 챙겨가기엔 너무 야박하지만 워낙 많은 건 수라 솔직히 적당히 무시하는 것들도 제법 나온다. - 나 역시 주급 생활자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ㅠ
이 와중에 오늘부터 회사에서 또 다른 모금 행사를 시작한다.
몰랐는데 직원들 중에 암이나 뇌출혈 같은 중병으로 장기 투병 중인 사람이 5명이나-그 외에 상해로 인한 장기 입원 직원이 몇 더 있다-있는데 그들을 돕기 위한 모금이다. 더 안타까운 건 그들 중에는 아래 윗 층에서 형 동생하던 후배도 있고 한 때 바로 옆자리에서 근무하던 선배도 있다.
사랑의 자석 홀더와 희망 엽서를 구입하고, 회사 밴드 동호회의 자선 공연 티킷을 구입해 주는 것으로 2만 원이 나갔다.
주 중에 또 한 번 부족한 용돈 때문에 추가 경정예산을 신청해야 하겠지만, 이런 도움을 받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감사의 대가'로는 너무나 값싼 것이다. 여기저기 아주 조금씩의 도움을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내가 벌고 누리는 것에 비하면 늘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깐.
이런 일에 나가는 돈은 그리 아깝지 않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4.10.31.
지금의 회사가 자랑스런 이유 중 하나가 어려움에 처한 직원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라 다들 궁하지 않을 정도의 높은 급여 수준을 누리고 있는 탓도 있지만 어느덧 알게 모르게 부조 문화가 자리 잡았다. 대기업치곤 2천 명 규모의 단출한(?) 직원 수가 늘 유지되고 있는 탓에 가족인지 동료인지 모호한 경계의 벽 사이를 건조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다.
본문의 모금활동도 이벤트 성격의 행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취업규칙을 통해 직원 중 유고가 발생하면 전 직원의 급여에서 일정금액이 자동적으로 갹출되도록 해서 우연한 불행을 당한 직원과 그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갑자기 직원이 사망해 생계가 막막해진 직원의 부인을 직원으로 채용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다행히 그 아내들도 역시 동종 업계 출신이어서 가능했다.
나 역시 근무 중에 세번의 경조사가 있었고 그때마다 과분한 동료들의 위로와 축하로 조사와 경사 모두 무사히 치렀다. 헤어진 이후에도 모든 인연을 살갑게 챙기기엔 너무나 많은 직원들이 스쳐갔지만 그나마 함께 있을 땐 인간적으로 모나지 않게 대한 덕분일 거다.
가끔씩 이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회사를 떠나야 할 순간을 상상해 본다. 분명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처지 앞에 놓이겠지만 그때까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위로와 축하'가 되는 역할을 해야겠지. 그럼 되는 거다.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남자의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11.8.]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좀 많이 샀다(2) (6) | 2024.11.04 |
---|---|
[2009.11.3.] 서둘러 온 겨울 아침에 생각하는 '중간 가기' (6) | 2024.11.01 |
[2009.10.28] 기계의 노예가 되지 말자 - 지난 밤의 헛 짓을 바탕으로 (2) | 2024.10.29 |
[2009.10.26.]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1) | 2024.10.25 |
[2009.10.23] 경제 전망의 바로미터 - 청첩장 개수 세기 (5) | 2024.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