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다 보내면서 여러 후회가 드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올 해는 감기 한 번 안 걸린다"라고 입방정을 떤 것이다.
물론 체중감량이 도리어 건강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자 한 말이긴 했지만, 연말을 며칠 남겨놓고 몸살감기 약을 몇 차례 먹었으니 제대로 공수표를 날린 셈이 되었다.
그래도 큰 병치레 없이 한 해를 넘기게 된 것이 너무도 다행이다. 연말정산을 위해 의료비를 정산해 보니 치과치료(스케일링과 간단한 충치치료)를 위해 쓴 비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간 나를 제일 괴롭힌 질병(?)을 생각해 보니 다름 아닌 '입 병'이었다.
'입 병'의 사전적 의미로는 입에 발생하는 병의 총칭이라고 할 것이지만 우리가 흔히 혓바늘과 입 안이 헐었다고 표현하는 구내염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요, '입이 크려고 한다'로 잘못 알려진 입 끝이 찢어지는 경우와 입술 전체가 붓고 갈라지는 경우가 흔한 입 병의 경우의 수다.
불행히 내 경우엔 혓바늘, 헐기, 붓기, 찢어지기, 갈라지기 등의 5종 세트를 돌아가면서, 때론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혓바늘, 헐기, 붓기, 갈라지기 4가지를 한꺼번에 수행 중이니 참으로 괴로운 노릇이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것이 없다. 혓바늘은 말할 때나 먹을 때 혹은 혀를 놀릴 때마다 이름 그대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괴로움을 주니 만만치 않은 상대고, 입술 안쪽이 허는 것 역시 처음엔 좁쌀만 하게 시작하거나 실수로 입 안을 깨물었을 때 작은 상처로 시작해서 때로는 두세 개로 분화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져서 나중엔 손톱만 하게 까지 매일매일의 성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각적인 공포까지 준다. 네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엔 창대하리라. 바로 이 놈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게다기 입술이 터서 찢어지는 고통은 또 어떠한가? 다른 입병과는 달리 출혈(?)을 동반하니 심약한 사람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이고 밥 먹을 때나 웃을 때 함부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 만드니 안면장애를 동반하는 몹쓸 놈이다.
하나도 대적하기 어려운 질병을 서너 개가 동시에 한 곳에 몰려있다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또한 뇌에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고통도 너무 잘 느낀다.
문제는 원인도 해결책도 딱히 없다는 데 있다.
면역력약화, 피로, 스트레스에 원인을 찾거나 한의학적으로는 화를 속으로 삭이는 체질의 사람의 '열'이 위로 올라오다 입에 몰리는 경우라고 해석하는 게 전부이고 치료 역시 잘 먹고 잘 자라는 무책임한 답변(?)이거나 아프면 알보칠이란 바르는 약이나 레이저로 지지라는 설명이 전부인 질병들이다.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가혹할 만큼 긴장을 줘서 생활해 보려고 한 지난 몇 달의 노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 아님 그 노력이 해이해져서 생겨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질병은 마음속에서 생겨난 다는 소박한 진리를 거울삼아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그런데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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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2.7.
입 병으로 된통 고생을 하며 2007년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때 쓴 글이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보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를 안 하는 것은 분명한데 가끔씩 원인 모를 질병이 찾아온다. 스트레스 탓인지 이유를 알 수 없이 생겼다가 그리고 이유 없이 치료되었던 그러나 꽤나 공포스러웠던 원형탈모가 살면서 두 번 있었고, 그 외 잔잔바리로 고생하는 것이 입 병이다.
그 시작은 대부분 고르지 못한 치열에 더럽게 급한 성질머리가 결합해 음식과 함께 입술을 깨물어 발생했다. 상처에 염증이 생기고 그걸 치료하는 과정에서 붓고 헐고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으로 진행된다.
2007년 가을에서 겨울은 미친 듯 살을 빼던 시기였다. 아마 다음 글 정도에 경과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불과 서너 달 사이에 10kg 이상을 뺐던 시기였다. 운동을 조금 병행했다곤 하나 근육량 동반 감소라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던 무식한 시기였기도 했다. 그 사이 건강진단의 모든 지표는 오히려 더 안 좋아졌고, 면역력 감소라는 훈장이 붙었다. 살을 빼야겠다는 방향성은 있었는데 그 목적도 명분도 허술했다.
다운사이징. 미니멀리즘. 스핀오프.
21세기 들어 그전 세기의 폭발 성장과 규모의 추구에서 효율과 실질을 추구하며 본질에 회귀하자며 떠오른 화두들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터보차저를 달아 엔진 배기량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뉴노멀이 되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산업디자인계는 미니멀리즘이 절대선이 되었으며 몸집을 불리는 대신 가짓수를 늘리는 쪽으로 스핀오프를 택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줄일 수 있는 '본질'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
희망퇴직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유능한 인력만 회사를 떠나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다. 결국 세상 모든 이치에 체지방만 줄어드는 법은 없다.
그러니 뭐든 적당히 하자.
근손실이 온다. 입 병이 온다.
하지만 그중 제일 큰 병은 입방정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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