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개념이 없거나 그리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의 것에 흔히 '막'字를 붙여 쓴다.
오디오쟁이의 경우 기기나 음원의 차이를 구별해 능력이 없는 경우, 아니면 자신의 고가의 장비에 대한 겸양의 표현으로 스스로를 '막귀'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론 어떨지 모르겠으나 막무가내, 마구잡이와 어원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는 이런 '막귀'의 심각한 문제는 사물의 본질이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인다-정확하게는 달리 들린다-는 점이다.
인티앰프용 점퍼핀을 킴버의 실버스테이크(동선과 은선을 서로 꼬아 각각의 효과를 극대화한 케이블)로 제작된 점퍼케이블로 바꾸고서는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워진 음 때문에 속상해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어젯밤에 들은 포레의 레퀴엠은 매우 맘에 든다. 비록 대편성은 아니지만 실내악치곤 많은 악기와 합창단 그리고 성악 독창부가 들어가는 어쩌면 복잡다단한 이 곡이 꽤나 매력적으로 들린다. 물론 좋은 음질로 제작된 CD도 한몫했을 것이나 정말 하루만의 극적인 간사한 반전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밤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에 스피커를 이동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스피커의 좌 우 폭을 줄여야 할 것이나 거실의 세팅이 이제는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라, 하는 수 없이 스피커를 벽으로 붙여서 시청자와의 앞 뒤 간격을 넓히는 방법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야만 했다.
플라시보 효과라 했던가? 오디오를 새로 들이거나 케이블을 교체했을 때 느꼈던 새로운 느낌을 바로 느낄 수가 있다. 장터에 매물로 내놓은 스피커도 그만 거두어들여야겠다. 딱히 지금 세팅에 불만도 없고, 새로 당기는 것도 없는 현실에 덜렁 팔려버리기라도 한다면, 지금보다 못한 스피커를 들이게 되는 악수를 둘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품 구입한 놈을 한 번 중고로 내치되면-신품가와 중고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이제는 이 돈을 가지곤 다신 신품을 구입하긴 틀려먹게 된다.
간사한 막귀! 게다가 일관성도 없는 이놈의 막귀 때문에 손 발이 늘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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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사실 이 글 앞에는 그보다 며칠 앞서 들인 지 딱 1년을 넘어가는 트라이앵글 스피커를 매물로 내놓은 글이 하나 더 있었다. 이유 없이 시큰둥해져 내놓았다가도 그리 팔려나가는 것에 또 짠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마음의 변덕을 부린 날 썼던 글이다.
비록 물건이지만 오랫동안 손때를 묻혀가며 애지중지했던 것이 여러 이유로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거나 수명을 마칠 때면 불필요한 감정이입이 되어 애잔함을 갖기 마련이다. - 물론 그다음 녀석이 들어오면 쉬 잊히긴 한다.ㅎ
작년 차를 바꾸던 마지막날 아내가 찍은 사진에도 같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진다. 7년여를 발이 되어 준 녀석인데 슬슬 여기저기 골골거리기 시작한 걸 내치는 거라 나 역시 무슨 고려장 시키는 느낌도 있었다.
이별과 만남이 일상이 된 요즘.
그것 하나마다 매번 감정을 소모하긴 너무 피곤하다. 편 가르기가 사회문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정 줄 것과 아닐 것을 구별하고 들을 것과 무시할 것을 고르며 이 쪽과 저 쪽을 갈라 두고 사는 게 세상의 이치가 됐다.
하지만 막귀에게는 그것들을 가르는 기준이 늘 흔들리고 제 멋대로다.
그러니 이젠 막귀대신 '팔랑귀'라 부르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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