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를 취소하겠다고 보류 게시를 올린 그날. 바로 그날 밤늦게 스피커를 구입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히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짧은 몇 초 동안 '이제는 안 팔련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는데 무슨 조화인지 다시 삼켜버렸다. 아마도 운명론(?)을 믿는 나의 신앙관 때문인지 팔라는 계시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다음 날 오후 저녁 일정을 조절하며 서둘러 집에 돌아와 멀리 용인에서 오신 손님을 맞았다. 부인과 딸 쌍둥이까지 대동하고 오신 맘 좋아 보이시는 분께 애지중지 아끼던 트라이앵글 셀리우스를 넘겼다. 신품 박스를 뜯은 지 정확히 1년 1개월 만의 일이다.
스피커 한쪽을 들고 지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마치 시집보내는 딸내미의 마지막 한 손을 잡은 아비의 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사람에게, 적어도 한 동안은 나보다 더 아껴줄 집으로 가는 것이니 기계에게 보내기엔 우스운 정은 이제 그만 거두어야겠다.
수표 몇 장의 봉투로 변신한 셀리우스를 보면서 본전 생각 이상의 짠한 마음은 왜 이리 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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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2.18. 출근길 영하 10도.
오디오 생활 중에 내 손으로 신품 박스를 깐 몇 안 되는 스피커였는데 특이한 곳에서 구입했고
마음에 변덕이 와 안 팔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으나
결국 그렇게 나가 버린 스피커가 되었다.
이후로도 여러 스피커가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으나 팔기를 주저했던 첫 스피커다.
대개 헤어진 것들이 다 그렇다.
이제는 몇 장 남은 사진과 조각은 나 있지만 지워짐 없이 음각으로 선명한 추억들. 그런 것들이 타일 사이의 때처럼 붙어있다 우연히 오늘처럼 불쑥 얼굴을 내민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집에 가서도 그들에게 나만큼의 또 다른 추억을 남기며 사랑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오디오 바꿈질이 끼치는 '추억 돌려쓰기'의 선순환이 그리 나쁘지만 않다.
용인에서 한밤중에 온가족이 와서 스피커를 둘러매고 돌아간 추억이 특히 쌍둥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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