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50회 그래미어워드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화제가 된 음반이 있다. 이미 여러 작곡가의 다양한 수난곡들이 존재하지만 다소 낯선 러시아 작곡가인 Grechaninov-그레차니노프 정도로 발음을 해야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의 합창곡 앨범인 수난주간(Passion Week)이다.
'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에서 알수 있듯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 모진 고문을 받았던 1주일을 Passion Week라 해서 수난(고난) 주간으로 기념하고 있다.
영어 Passion이라는 단어에는 모순되게도 '열정'이라는 의미와 함께 '고통'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열정이 있으면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제법 멋진 단어이다. 개신교 쪽에서는 통상 '고난주간'으로 불리는데 온통 매스컴에서는 앨범의 제목을 '수난주간'으로 번역하여 기사화하고 있다. 아마도 가톨릭에서 기원한 절기임을 감안할 때 그쪽에서는 수난주간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Chandos SACD 레이블로 발매된 이 앨범은 최우수 녹음 기술상, 최우수 서라운드 음향상, 클래식 최우수 음반상, 클래식 올해의 프로듀서상, 최우수 합창 연주상 등 모두 5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그중 '최우수 녹음 기술상'을 실제 획득한 것뿐 아니라 한국인 엔지니어가 녹음에 참여한 것으로 더욱 기사화되어 알려졌다.
사운드미러 한국지사 대표인 황병준씨가 바로 그인데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별을 딴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힌 것을 읽어 보았다. 후보에 오른 5개 부문중 유일하게 수상한 '녹음기술상'의 중심에 바로 한국인 엔지니어가 있었다는 것이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앨범 북클릿에는 'Assistant 엔지니어'정도로 표시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리 문제가 아니다.
혹시 스피커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으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지? 오래된 성당의 천장을 휘감아 내려오는 파이프 오르간의 잔향을 기억해 낸다면 바로 이 앨범을 통해서 그 이상의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목소리로만 구성된 아카펠라 합창곡임에도 불구하고 연주 내내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가 배음으로 깔려있는 착각을 하게 하는데 그만큼 은은한 음의 잔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공간감이 특히 일품이다. SACD의 깔끔한 음질은 말할 것도 없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형편은 못되지만, 합창곡 한 곡 한 곡 모두가 제목 그대로의 비장한 경건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이미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지내고 난 후에야 앨범을 구해들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늦은 저녁 마음을 정돈할 필요가 있는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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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12.28.
성탄절이 지난지 며칠 안 되었으니 오늘도 여전히 고난주간과는 동떨어진 날이다. 하지만 연일 즐겁지 않은 뉴스만 가득하고 주변 역시 늘 내 맘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다 보니 사는 게 그저 고난이다. 여기저기 화재소식이 이어지는 데다 급기야 어제는 마약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자살을 했다.
배우에게도 과몰입이 있듯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일정지분 배우 이상의 정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선균이 그랬다. 동네 편의점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만나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이웃같은 뭐 그런 느낌이었다.-실제 사는 곳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저 마음을 정돈하고 이제 며칠 후 소멸할 23년을 추억하기 위해 한 장 음반을 찾아야한다면 이 음반을 여전히 추천한다. 소란스럽지 않게 고난을 마주 대하는 자세를 다시 다잡을 수 있게 할 것이다.
24년이 된들 이 텁텁한 세상이 바뀔 희망은 요원해 보여도 늘 각자의 탈출구는 있기 마련이다. 음악으로 그 구멍의 크기를 조금-잠시나마-넓히는데 좋은 도구로 이 음반을 추천한다. SACD 플레이어를 아직 소지하고 있다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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