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1.3.
오늘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94년 1월 3일. 아마도 월요일이었겠지.
내가 (아직 대학 졸업을 하기도 전이었지만) 첫 출근을 한 날이었다.
전공인 무역학을 살려볼 생각으로 당시 '세계경영'으로 잘 나가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 무역상사인 (주)대우에 지원했다 낙방하고-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과 조상이 풀파워로 도왔다-차선책(?)으로 삼성그룹에 지원했다가 오늘의 내가 됐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이력서도 몇 장 못써봤네.
34기 13차. 이후 수인번호처럼 붙은 내 회사생활의 공채 그룹 기수다.
마지막 학기까지 수업을 꽉꽉 채워 겨우 종강을 했는데 방학을 즐겨볼 틈도 없이 나의 회사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시청 앞 삼성본관 골목에 모여 기흥 삼성전자 첨단기술연수소 행 버스를 타고 한 달간의 그룹입문교육을 시작한 날이다. 각 계열사로 뿌려질 처음 보는 수백 명의 동기들과 함께 비둘기색 죄수복작업복 스타일의 연수복과 흰 실내화를 신고 한 달을 살았다. 왼쪽 어깨에는 9*번의 교육생 번호를 붙였던 기억이다.
30년. 짧진 않은 시간이다. 잘 하진 못했지만 성실을 더 해 최선을 다했다. 제조업과는 달리 치열한 경쟁과 장기근속이 어려운 환경의 금융회사다 보니 동기들이 하나 둘 경쟁의 대오에서 밀려 나가는 동안에도 다행히 정해진 순서에 맞춰 승진을 했고 부서장이 됐으며 이젠 어느덧 임금피크와 정년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서 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 아이가 석사가 되도록 교육을 시켰으며 차도 사고 집도 샀다. 한 사람이 평생 해야 하고 할 일들은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으니 허투루 산 인생은 아닐 것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강산이 세 번 바뀔 세월이니 억지로 기억하면 별의별 일이 왜 없었겠냐만은 신기할 정도로 기억이 삭제되어 그리 아프지 않게 회사생활 30년을 맞는다. 행운과 우연 그리고 누군가의 기막힌 돌보심이 작동했을 것이다.
이제 물리적으로 2030년이 되는 해까지 6년 반 정도를 더 근무할 수 있다. 그사이 또 무슨 일이 있을 수도 그 후로도 또 무슨 일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 30년이 모두 내 공이 아니듯 남은 기간도 크게는 걱정하지 않는다. 회사생활 중에 크게 감정의 동요 없이 감내하는 문제해결 훈련이 된 탓이기도 하다. 뭐든 닥쳐서 궁리해 찾아낸 방법이 의외로 성과가 좋았던 경험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 늘 '미세조정'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신앙이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생각보다 오늘이 꽤 담담하다.
어제는 함께 그 길을 걸은 아내와 내 30년 근속을 자축하며 오붓이 저녁을 했다. 그걸로 충분한 보상이 됐다.
오늘은 그저 31년 차 첫 출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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