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어린이라 부르기에 무색할 만큼 청소년의 '삘'을 느낄 수 있어서 딸 아이나 부모 된 입장에서나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그냥 보내기는 서운해서 미리 학습만화 한 질과 딸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핸드폰커버-핸드폰이 아니라 커버라 너무 다행이다^^-로 그럭저럭 싸게 막았는데 정작 행사(?) 당일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동산 등의 유원지는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주차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기 일쑤일 것이라 나름 고민 끝에 아내의 제안대로 신애라 씨가 진행한다는 '어린이음악회'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늦은 예약 덕택에 남은 자리라곤 3층 높다란 자리여서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장점 빼고는 무대와 너무 멀다. 원래부터 작을 것이라 생각되는 신애라의 얼굴이 안 보이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강남심포니의 연주로 준비된 생상스(그냥 생상으로 불러야 맞는 것 아닌가?)의 '동물의 사육제' 전곡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서곡과 일부 아리아로 구성된 공연이었는데, 며칠 전 첼로를 4/4 full size로 바꾼 딸아이에게 첼로 솔로가 포함된 '동물의 사육제'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아이들이 문제다.
평소엔 미취학 아동의 입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예술의 전당이 어린이 전용공연이라는 이유로 무제한 입장을 시키는 바람에 공연 중간에 자버리는 아이는 양반인 축에 속하고, 아직 글도 모를 법한 어린아이부터 공연 중간에 우는 아이, 나가겠다고 때를 쓰는 아이, 수시로 공연장 밖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빠와 핸드폰 통화를 시도하는 아이, 공연 끝나고 뭐 사줄 거냐고 종용하는 아이.
마술피리 서곡 중간에 터져 나온 박수소리는 차라리 애교로 넘어갈만하다. 아! 그런데 파미나 공주의 아리아 솔로보다 더 큰 소리로 묵찌빠를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게다가 그런 아이들을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 아이의 엄마는 정말 너무했다.
평상시엔 겨우 바이엘 학원레슨 정도나 보내던 엄마 아빠들이 이런 날이면 갑자기 클래식 해설가로 돌변해서 공연 내내 옆자리에서 중계방송을 하는 일회성 어린이날 공연은 이제 더 이상 찾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라는 신애라의 마지막 멘트는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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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8.
우리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기대와 요구가 타당할 만한 곳에서라야 그런 기대가 요구가 적당해지는 법이다. 애들이 가득할 곳에 뭔가 질서나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혼자만의 상상을 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 발을 몹시 잘 못 뻗은 경우였다.
요즘은 죄다 외동이다. 적절한 처신을 교육하지 않은 부모와 그 아이라면 상태는 더 안 좋아졌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애견 카페에만 가도 교육받은 개랑 그냥 오냐오냐 키운 개가 다르다. 늙은 개가 점잖은 건 사람과 다르지도 않고.
뭐 어린이날이었으니 이해할 만도 하고 아이들이 또 그런 것이니 어쩔 수도 없는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옆에서 한술 더 떠서 공연을 망치고 있는 '부모'들이 문제다.
세상에 나쁜 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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