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가 끝난 저녁 시간, 야외 테라스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도 좋지만 간간이 헛기침이 오가는 객석에 앉아 때로 안단테로 때로 비바체로 터져 나오는 연주를 듣는 것도 여름밤의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익숙하지 않은 규칙 때문일 터. 박수는 언제 쳐야 하는지, 자리는 어디에 앉으면 좋은지, 또 악보 넘겨주는 사람은 왜 있는지?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 혹은 주말, 한여름 밤의 낭만을 찾으러 연주회 한 번 가시지 않으렵니까? 궁금해했던 것을 바로 지금 알려 드릴 테니.
음악을 좋아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장르의 범위도 넓혀지는 것 같다. 대개는 가요에서 팝ㆍ클래식을 지나 마지막으로 재즈에 닿게 되는데, 물론 순서가 다른 사람도 있고, 각 장르의 벽을 넘는 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특히 클래식과 재즈로 가는 과정은 난코스에 해당되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정통 클래식 연주자들이 팬들에게 한 발 다가서기 위한 다채로운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고속도로에 도전한 초보 운전자처럼 라이브 무대를 통해 박차를 가해 보면 어떨까? 특히 피아노 연주회는 시청각적으로 익숙한 데다, 뉴 에이지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이 많아 초보자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피아노 연주회에 가 볼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몇 가지를 점검해 보자.
가장 좋은 자리는?
일단 연주회에 가려면 자리를 예매해야 한다. 그런데 피아노 연주회의 경우 가장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피아노 독주회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관건이다. 따라서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을 볼 수 있는 1층 왼쪽 앞 좌석이,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층 중앙보다 인기가 높다. 실제로 지난 4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김정원과 친구들> 공연에서도 ‘김정원의 손가락’을 볼 수 있는 1층 왼쪽 구역이 가장 먼저 빠져나갔다. 연주음악 전문 레이블인 스톰프 뮤직은 “유명 피아니스트의 공연은, 왼쪽 구역에 빈자리가 생기면 기존 자리를 취소하고 다시 예매하는 일도 속출한다”라고 말한다.
사실 어느 좌석이나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라이브 무대이니만큼 피아니스트의 현란하게 돌아가는 손가락과 힘찬 페달링, 섬세한 표정까지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악보 넘겨주는 여인?
피아노 연주회에 가면 종종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들을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부르는데, 연주자가 악보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을 때 페이지 터너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특히 피아노는 오른손과 왼손 악보가 나뉘어 2단으로 돼 있기 때문에 다른 악기들에 비해 악보를 넘기는 횟수가 잦다.
따라서 페이지 터너와 연주자의 호흡은 매우 중요하며, 흔히 연주자의 성향ㆍ습관을 잘 아는 선후배나 제자가 맡는다. 페이지 터너에게는 지켜야 할 사항이 있는데, 연주자가 돋보일 수 있도록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하고, 액세서리도 해서는 안 된다.
박수는 언제 칠까?
연주회에서 가장 헷갈리는 것은 박수 치는 타이밍. 뉴 에이지 곡은 별반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정통 클래식 음악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 이렇게 까다로운 규칙을 만든 사람은 바그너다. 작곡가가 의도한 곡의 흐름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라는데, 음악이 귀족들의 사교놀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까다로운 규율을 만들었다는 뒷얘기도 있다.
아무튼 박수는 모든 악장이 끝났을 때 친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서 악장을 체크하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다면 묻어 가자! 대개 연주가 끝난 뒤에도 곡의 잔향을 위해 2~3초 뒤에 박수를 치는 만큼, 자신이 없다면 남들보다 앞서 박수 치는 일은 삼가자. 게다가 곡이 마무리되면 피아니스트는 손을 크게 내려놓거나 객석으로 얼굴을 돌려 박수 칠 타이밍을 알린다. 눈치만 있다면 크게 민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끝도 없는 무대 인사?
커튼콜(curtain call)'은 뮤지컬이나 음악회 등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박수로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다시 불러내는 일을 말한다.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공연에 대한 찬사를 표현하고, 출연자는 감사 인사나 앙코르 무대로 화답하곤 한다.
그런데 특히 클래식 공연에서 몇 번이고 무대 앞뒤를 드나들며 인사하는 성악가나 연주자들을 봐 왔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여러 번 인사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몇 번의 커튼콜을 받느냐는 그 공연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나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바로티는 지난 1988년 독일에서 열린 오페라 <사랑의 묘약> 공연에서 1시간 7분 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아 165차례의 커튼콜을 받으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객석에서는 어떻게 환호할까?
국내 유명 가수의 콘서트라면 ‘오빠’ㆍ‘누나’를 비롯해 이름을 연호하거나 ‘멋지다’ㆍ‘사랑한다’는 등 다양한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런데 연주회에서는 벅찬 마음에 열심히 맞부딪치는 손바닥과 달리 입술은 옴짝달싹 못 할 때가 많다. 조지 윈스턴을 향해 ‘오빠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 무대가 마음에 쏙 들었다면 박수를 치며 ‘브라보’라고 말하자. ‘브라보(bravo)'는 ‘잘한다ㆍ좋다’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남자 출연자에게는 ‘브라보’, 여자에게는 ‘브라바’, 혼성일 때는 ‘브라비’를 외치면 된다. (이하 생략)
- 글 : 윤하정 / 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 방송인
[글 올리기]
오늘은 2024.1.22.
짐승들도 다 하는 먹고 마시고 듣는 것과 같은 오감의 영역에 있어 뭔가 고등 영장류로서의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창작활동을 덧붙이고 그것을 즐기는 방법에 룰과 매너를 만들어 냄으로써 문화라는 카테고리를 탄생시켰다.
날고기를 씹던 것에서 다양한 조리방법과 시즈닝이란 창작물을 만들고 먹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플레이팅과 드레스코드를 더해 이 땅에 미슐랭의 별을 받는 팬시 레스토랑이 만들어졌다.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내기 시작하면서 계승자에 의해서만 전달되던 원시적 '구전' 음악이 드디어 채보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방식의 '고전' 음악이 되었다. 여러 차례 룰 조정이 있기는 했으나 그 음악을 향유하는 방법에 여러 절차적 매너를 만들어 내면서 사교와 종교적 영역에 있어 이너써클 안팎의 사람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었다.
한때 음악을 '독점'했던 왕정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저물었지만 여전히 그 음악 '공연 현장'에 접근하기 위해선 사전적 학습과 훈련은 물론 선대에 제정된 다양한 공연에 임하는 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비용까지.
그러니 한번 읽어보고 영 내 취향이 아니면 그냥 안방 스피커로 혼자 즐기면 된다. 예전 귀족들처럼.
날것이 건강식이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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