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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08.6.27] 늦었지만, '비보이를 사랑하는 발레리나'를 보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 22.

어제 공짜표가 생겨서 평일 저녁이지만 가족들과 공연을 보았다. '비보이를 사랑하는 발레리나'.

꽤나 유명한 공연이고, 얼마 전에는 저작권의 소유를 두고 패가 나뉘어 서로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소송이 걸려있다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로 공연과 홍대 앞 공연장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나 본데... 내 경우는 그중 홍대 공연을 본 것이 되겠다.

비보이 전용극장이라고는 하나, 대학로의 그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소극장이다.  극적인 스토리도 별거 없다. 발레리나가 비보이에 미쳐서 발레 때려치우고 비걸(?)이 된다는 게 전부이다. 중간중간의 개그 콘서트풍의 양념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지겨울 뻔했다.

하지만 좁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힙합의 음악과 젊음의 열기, 재기 넘치는 비보이들의 역동적인 춤과 눈요기 거리로 서있는 꺽다리 치어리더 풍의 아가씨들이 모여 90분의 공연이 잘 버무려져 있다.

작년에 관람한 같은 비보이 공연인 '마리오네트'와 비교할 때 스토리의 구성이 오히려 허술하나, 비보이 본연에 집중하여 성공하고 있는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출연자 한 명 한 명의 개인기를 십 분 살려 주고 있으며,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비보이의 춤사위 사이에 발레라는 전혀 다른 이질감 있는 요소를 정면으로 배치함으로써 이를 돌파하고 있다.

정말 어쩌다 오게 되는 홍대 앞 젊음의 기운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사실 넥타이를 매고 공연장에 온 사람은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을 뿐이었다-것에 아쉬움이 있지만 가족과의 문화 나들이는 언제나 즐겁다.

돌아오는 길엔 촛불집회로 인한 교통통제로 너무 멀리 돌아서 집으로 왔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는데' 의식성 없는 기성세대의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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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22.

 

본문의 공연은 그다지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지만 맨 마지막 줄에 쓴 글이 내내 마음에 걸려 반성하듯 옮겨온다.

 

서울의 봄을 꿈꾼 민주화운동의 세대를 통과해 살았지만 늘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이었을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한쪽에선 공권력이란 이름의 청카바와 방패를 들고 헬멧을 쓴 채 최루탄을 쏘고 다른 한쪽에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을 들었던 참담한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실제 투쟁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동맹휴업과 기말고사 거부 뭐 이 정도가 내가 한 참여였을 뿐이었다. 심정적으론 그들이 느끼는 불의에 십분 동의하고 응원하면서도 대개는 뒤로 숨는 비겁함을 택했다.

 

세월이 지나 기성세대 즉 양보와 이해가 통하지 않는 인생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다.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촛불이 들불이 되어 온 나라를 밝히는 그 지점에선 한 번쯤 동참했어야 했는데 이제 보니 그러지 못했다.

 

무엇하나 변하는 게 없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기만 하는 촛불의 대열에 그저 교통이 막히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그저 그런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무언가를 깨고 부수는 데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내리친 마지막 시도가 있었던 덕이다. 맨 나중의 그 한 번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빈손짓이 모여 결국 일을 내는 것인데 그걸 시도할 계속할 의지도 끈기도 없었다.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그나마 생겨난 과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나누어 누리고 있는 삶. 멀리 누군가의 지하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생충.

 

민주화의 시계가 족히 10년은 뒤로 간 듯한 요즘. 내가 할 일이 남았다면 무엇일까? 총선이 코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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