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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9.2.19] 갑자기 마란츠 CDP의 리모콘이 작동하지 않을 때

by 오늘의 알라딘 2024. 3. 20.

마란츠 SACDP인 SA-11s1을 갖고 있다. 지금은 후속 모델인 11s2가 출시되어 있지만 7백만 원대의 플래그쉽인 7s를 소유하기까지 갈 길이 너무 먼 사람에게는 유일한 대안의 CDP였다.  

내 경우 앞으로 CDP를 교체한다면 7s가 아니라 '에소테릭'이 되겠지만 SACD뿐 아니라 RED Book 규격까지도 섬세한 디테일을 부드럽게 제시해 주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마란츠 CDP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픽업의 불안정이다.  내 경우 가끔, 특히 SACD를 중심으로 읽지 못하거나 모터가 굉음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제조사 측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연도를 감안할 경우 벌써 연식이 오래라 픽업이 자연사(?)할 때가 가까워진 이유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리모콘이 작동하지 않는다. 고급 앰프나 CDP가 대부분 그렇지만  리모컨 기능 중에 '전원'을 켜고 끄는 기능은 빠져있다. 써보면 알겠지만 전원이 빠져있는 리모컨은 사실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CD를 넣고 빼는 일을 하자면 어차피 CDP까지 접근을 해야 하고 볼륨 컨트롤이 없는 CDP의 경우 정말 리모컨을 사용할 일이 없다. 또한 전곡 감상이 주인 클래식 감상자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지금 발견한 리모컨 작동 불량은 언제부터 '고장'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오늘 현재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뿐.

먼저 리모컨의 건전지를 교체해 보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사용하는 것이라 방전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닌가 보다.  여전히 안 된다. 리모콘 쪽이 아니라 CDP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함께 사용하던 소니 통합 리모컨에도 CDP의 기능을 인식시켜 놓았었는데 이것으로도 반응하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서 Tip 하나. 리모컨이 정상 작동하는지 않는지는 디지털카메라를 통해서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가시광선 외의 적외선을 사용하는 리모컨의 경우 눈으로 봐서는 발광부에서 빛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외선에 반응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통해 리모콘의 발광부를 보면 스위치를 조작할 때마다 반짝거리는 불 빛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휴대폰의 카메라로도 마찬가지이니 필요하면 언제든 확인 가능하다.

그래도 못믿어워서 리모컨만을 인켈 AS센터-마란츠를 함께 서비스하고 있다-에 보냈었는데 역시 리모콘에는 문제가 없단다. 하지만 돌아온 리모콘과 함께 AS센터 기사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문제를 바로 해결했다.

"내가 AS센터에서 몇 년을 근무했지만, CDP의 리모콘 수신부가 이상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100% 기기 뒷 면의 컨트롤 스위치가 옮겨져 있을 테니 이걸 바꿔봐라"  뭐 대강 이런 내용이었는데 너무도 자신감에 찬 대답이었다.

사실은 이랬다.

문제의 리모콘콘트롤러 선택 스위치


마란츠의 중고급 CDP의 경우-하지만 최상위 기종인 7s는 그렇지 않다-기기 뒤편에 외부 유선 리모컨 콘트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단자가 있고, 외부(External) 유선 리모콘 단자를 사용할 것인지 아님 보통의 무선 리모컨(Internal)을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스위치가 있었는데 이 스위치가 '외부' 쪽으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언제 그랬을까?

손으로 일부러 움직여야 하는 스위치이니 자동으로 변경되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몇 주전에 접점 개선제인 '케이그'를 가지고 단자 청소를 한답시고 만지작 거리다가 스위치를 건드린 것으로 추정된다.

따로 수리비가 들어갈 일이 없어졌으니 일단 다행이고, 무엇보다 그 큰 덩치를 들고 AS센터를 방문할 일이 없어졌으니 정말 다행이다.

혹시 마란츠 CDP의 리모컨이 문제라면 꼭 먼저 점검해 보시라.


[글 더하기]

2024.3.20.

 

본문을 썼던 2009년의 글을 읽고 당시에 단 한 명이 동일한 상황을 해결했다는 답글이 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희박하고 희한한 경우의 일이었단 말이었고 다른 의미로는 또 있을 수도 있단 걸 의미했다.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거나 설명 못할 일이 왜 없을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적, 우연, 착각, 상상 등 동원 가능한 말로 적당히 에두르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스위치가 옮겨간 것처럼 물리적 외력이 필요한 일은 필시 누군가의 힘이 필요했을 텐데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청소하다 건드린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으나 내내 찜찜하다.

모든 결론은 결국 1) 내 힘의 활동반경 안에서 2) 생각 가능한 수준 내에서 이루어진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것이 힘이다란 말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 것이며 힘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 모든 것은 필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하루하루가 만들어진다. 겸손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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