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어 간다는 것은 뭔가에 별로 감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슬픈 영화에서도, 이쁜 여자를 봐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소유해도 별로 감동스럽지 않다거나 쉬 사라지는 이런 경우이다.
최근 자지러지게 배꼽을 잡아가며 웃어보거나 신나게(?) 울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아련하다면 당신은 이미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나 역시 실로 오래간만에 남의 물건(?)을 그것도 잠시 구경했을 뿐인데 두고두고 감동스러운 경험을 했다. - 벌써 이틀이나 지난 일이 되었는데도 아직 생생하니 말이다.
회사 후배의 돌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 청계천점에 들렀다. 원래는 황학동점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보다 범용적(?)인 이름인 '청계천 점'이 되어 있었다. 뭐 중요한 것은 아니고.
아무튼 대형 할인마트 치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여유로운 주차장을 가지고 있을 이곳에서..... 오늘 말하려고 하는 검은색 '아우디 S8'을 목격했다.
얼핏 운전석에 들어앉은 실망스러운 외모의 주인이 보인다. 트랜스포터의 '프랭크'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왜 이런 멋진 차는 꼭 저런 시골 장터의 3류 건달 같은 사람이 몰고 다닐까? 옆자리의 패션 트레이닝복 차림의 범상치 않은 젊은 아가씨가 그가 졸부 아류작임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스포츠 세단이란 특징을 감안하면 운전기사 같진 않은데.
게다가 뽑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을 저 차를 아마도 마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면서 사고를 쳤는지 조수석 뒷자리 도어 부분을 험악하게 긁어먹었다.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운전석의 아저씨와 조수석의 아가씨 분위기가 험악하다.^^ 이것도 뭐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제부터가 본론!
막 주차를 했기 때문인지, 아님 운전사가 실수로 액셀을 밟았는지 모르겠으나 S8의 배기음을 들을 수 있었다. 감동스럽다. 중저음이다. 그렇다고 양카의 소란스럽지 않은 '고급'스런 배기음이 시속 100Km를 만드는데 불과 5초면 된다는 이 차의 성능을 한마디로 대변해 준다. 불과 '부우웅' 한 번의 배기음이었을 뿐인데 이리 감동스러울 수 있을까?
얼마 전 1,2,3편을 내리보았던 트래스포터의 3편인 '라스트 미션'에 바로 아우디의 A8이 등장한다. 비록 S8이 아닌 기본 모델인 A8이지만 6,000cc의 엔진에 사륜구동 주행이 가능한 W12 콰드로 모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음을 영화 속에서 들었을 때, 그땐 그저 영화 속의 효과음 이러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리 그대로를 이마트 주차장에서 들을 줄이야!
벤츠의 AMG튜닝이나 BMW의 고성능 버전인 M시리즈처럼 아우디 역시 달리기 성능에 보다 주안점을 둔 럭셔리 스포츠세단인 S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차급에 따라 S4, S6, S8...... 뭐 이런 식으로.
물론 오로지 뜀박질에 목적을 둔 버전인 RS시리즈가 또 있지만 평상시에는 얌전한 럭셔리 세단에서 필요할 땐 언제든 슈퍼카로 돌변하는 S시리즈가 유독 매력적이다.
S8. 외관은 일단 세단이지만, 심장은 V10 스포츠카 엔진을 얹은 1억 8천만 원짜리의 이 녀석은 '양카'스러운 스포츠카를 몰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아저씨들에겐 '꿈'이 될 수 있는 대체품이다.
10기통의 V10 5,200cc의 엔진. 2톤에 가까운 차체를 제로백 타임 5.1초로 만들어내는 450마력의 출력. 20인치 알로이 휠. 세라믹 브레이크디스크. 뱅앤울룹슨의 오디오 시스템(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하진 않으나 디자인 하나는 인정!)... S8을 대변하는 스펙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남의 물건으로 흥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분 좋은 아우디 S8의 배기음은 언제든 환영이다. 아직 이런 물욕에 감동을 받는 걸 보니 아직은 덜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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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3.21.
아우디가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폭스바겐 그룹의 대장격으로 독 3사-벤츠, BMW, 아우디-의 마지막을 늘 장식하며 판매량도 같은 순서로 언급되던 것이 올해들어선 BMW가 1위로 올라선 마당에 렉서스와 볼보에 그 자리를 내주며 지난 1월엔 179대를 판매하며 12위에 그쳤다.
예전 디젤게이트로 한동안 판매를 못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기도 했고 몇 해 전엔 전장류 간의 통신이 먹통이 되는 통신모듈 이슈로 원성이 자자했다. 거기에 홈페이지 관리조차 무관심한 딜러사의 미적지근한 마케팅이 한몫 거들면서 할인 때문에 구입하는 영끌 양카의 이미지만 남았다. 찌라시겠지만 한국시장 철수설까지 나돌면서 인심은 더 흉흉해졌다.
콩 볶는듯한 사람들의 변덕을 뭐라 할 만 하지만 의외로 소비자는 대단히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적어도 가성비를 넘어선 가치를 기대하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난 이러저러한 '기스'는 더 이상 프리미엄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참 좋은데. 이제는 차가 이동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세상이라 그 가치를 폄하받는다. 그러고 보면 본질에 집중하란 말도 곱씹어 봐야 한다. 본질도 결국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마나 한 말이겠지만 결국 본질은 '소비자'다.
당신의 소비자는 누구인가?
Know Your Customer. KYC는 금융업계에서만 필요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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