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에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본격적인 여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폭염의 계절에 진공관 앰프를 영입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 행위에 가깝다. 많은 진공관 애용자조차도 트랜지스터 앰프를 한 조 더 갖추어 놓고 여름을 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이 번에 자살행위를 해버렸다. 그리고 아직까진 후회가 없다.
마크레빈슨 프리를 대체할 매력적인 앰프를 잠깐 동안이지만 미친듯 찾아다녔다.
분리형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나서는 사실 더 이상 분리형을 고집할 이유도 없어진 데다, 스피커와의 상성과 내 음악적 취향을 감안하면 결국 다시 A급 인티 앰프나 아직 미지의 영역인 진공관 앰프 밖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지난 아이어쇼에서 보고 난 후에 계속 눈에 밟히는 '판테온'이 어른 거리지만 아직 너무 비싸다. 중고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런데 판테온의 제작사인 'Tone'에서 이 달 'Ti-200'이라는 새로운 중급 진공관 인티를 출시해서 그나마의 조급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국산 진공관 앰프 제작사치고는 계속 고가'정책을 펴고 있는 동사의 마케팅 원칙에 따라 Ti-200 앰프 역시 360만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표가 붙어있다.
웹상에서 어찌어찌하여 알게된 분을 통해 한 대를 구했다. -판매자와의 '엠바고'약속에 따라 구체적인 구입경로는 생략한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사진보다 실물을 마주 대하면 훨씬 고풍(?) 스럽다.
범상치 않은 박스형 케비닛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감이 진공관 앰프의 클래식한 면을 살려 주고 있다. 이건 보기에 따라서 10년도 더 된 앰프로 보일 수도 있다^^ 붉게 달아오른 진공관을 볼 수 있게 가로로 긴 창을 내어 놓은 점이 또 하나의 특징. 하지만 실내 조명하에서 이 창으로 보이는 진공관 빛이 그리 밝지 않아서 실내 등을 모두 끄고서야 제대로 된 진공관 빛을 감상할 수 있겠다.
음색은 기대한 바 그대로다.
진공관앰프 치고는 작다고만 할 수 없는 채널당 20W의 출력으로 음압이 비교적 높은 축에 드는 내 스피커를 구동하는데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유의 음색을 보여주는 데는 무난하다. 거기에 따스한 음색과 의외로 명징한 면까지 구비되어 있어서 찐득한 첼로의 현을 좋아하는 내게는 무척이나 잘 맞는다.
저음이 다소 풀어지는 면이 있으나 충분히 예열된 이후에는 밸런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 따라서 다른 진공관도 같겠지만 30분정도의 예열이 필요해 보인다.
한 가지 장점을 더 찾아보자면 기대 밖으로 정위감이 훌륭하다. 앰프를 바꾼 참에 스피커 간격을 조정했고 인터 케이블을 Wire World의 Atlantis5로 교체하여 앰프만의 능력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무대에 그려지는 악기별 위치와 포커싱이 잘 표현된다.
다시 말하지만 멀지 않아 '판테온 Mk3'로 갈아탈 예정이다. Ti-200이 이 정도 실력이라면 판테온으로의 교체를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 사이에 충분히 Tone사의 튜닝 포인트를 찾아서 준비하는 시간 동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을 찾자면 국산 전자기기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어딘지 모를 조립상의 마무리가 2% 부족한 부분-아마도 전 공정을 핸드크래프트에 의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상판의 도색상태가 기기 가격을 무색하게할 만큼 좋지 못하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허접해 보이기까지 한 리모컨. 이게 전부이다.
이 여름을 진공관 난로 하나를 끌어안고 있게 생겼지만, 아직까지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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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5.31.
얼추 20년은 족히 되어가는 내 오디오 생활에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저 날 이후로 내 메인 앰프는 15년간 줄곧 진공관 앰프다.
그사이 경험해 본 출력관이라곤 EL34에서 KT88, 그리고 다시 EL34로 돌아간 단순한 흐름이지만 현대 스피커를 울리는데 경험해 볼 만한 진공관적 큰 특징을 느끼는데 충분했다. 지금은 전혀다른 진공관 앰프를 사용 중이지만 생각보다 관의 내구성도 좋아서 히터가 나간 출력관 한개를 교체한 게 그간 수리의 전부다. -뭐 몇 년에 한 번 릴레이를 교체하고 있긴 하다.
요즘 빈티지와 복고 레트로가 다시 유행의 정점에 서다보니 전구에 그냥 불이 들어오는 것 하나만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소유물이 되어버렸다. 나긋나긋하면서도 풍성한 음색을 느끼게 하는 플라시보도 다 이런 데서 나온다.
바이어스 전압을 수시로 맞춰줘야하고 관도 가끔 뽑아 닦아줘야 하는 등 전혀 손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취미의 영억으로 계속 남게 만드는 핵심요소라 뭐라 할 건 아니다.
앞으로 진공관 앰프와의 생활을 계속 소개할텐데 혹시 다음 앰프를 뭘로 하지? 고민 중이신 분이라면 버킷리스트에 진공관 하나는 꼭 넣어두자. 요즘 중국산 진공관 앰프도 잘 나오는 것 같으니.
하지만 한가지 단점은 기억하시길. 여름에 끌어안기엔 여전히 부담스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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