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노이 '캔터베리 15'를 들인 지 딱 열흘 만에 2차 삽질을 재개했다. 심하다. 알고 있다. 이미 집에서도 욕(?)을 충분히 먹었고 그 증세를 나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너무 뭐라 하지 마시길.
오디오 업계가 늘 보상판매가 가능한 것이 문제다.
만약 장터에다 스피커를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그 이후에야 새로운 스피커를 구입해야 한다면 아마 귀찮아서라도 바꿈질을 못할 것이다. 게다가 '탄노이 캔터베리 15'와 같은 적잖은 크기와 금액의 대형기는 환금성이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을 테고 바꿈질에 엄두도 안 날 텐데.
하지만 불경기 때문인지 나름 인기 기종들은 모든 샵에서 다 잘 받아 준단다.
단순 매입이 아니라 매출이 전제된 '보상판매'는 잘만하면 매입/매출 양 쪽에서 마진을 낼 수 있는 무시 못할 경영의 비책이니 샵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지루한 기다림 없이 원하는 기종을 바로 들일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샵의 품질 보장받을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약간의 다운 그레이드만 이겨낼 수 있다면 바꿈질의 지름길이 된다.
게다가 이제는 샵도 아니고 '메이커'에서도 받아 준단다.
그래서 들어온 녀석이 금잔디음향의 플래그십인 '아틀란티스'이다.
이미 카산드라 시리즈 때부터 금잔디음향의 행보를 관심 있게 보아왔는데 북쉘프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선 그냥 쓸만한 메이커가 국내에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물론 그 후로 금잔디 칼라스에서도 '카이로스'나 '창공' 등의 톨보이가 연이어 출시되었지만 모두 내 시선을 끌만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눈에 안 들면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성격 안 좋은 건 어찌 달래 가며 살겠지만, 아무리 착해도 밉상의 마누라 하고는 하루가 길다는 옛 선현의 말씀을 허투루 들을 것이 아니다.
더 솔직히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산 오디오 기기는 도저히 눈에 차지 않는 '똥 폼'만 가득한 '낑깡족' 오디오파일이었음을 실토한다.ㅠ.ㅠ
(요샌 오렌지족이니 낑깡족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으니 뭔 말인지 이해 못 하는 독자도 있겠구나! oopsㅠ~)
'아틀란티스'의 디자인도 정체성의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뭐 스피커가 다 뜯어보면 거기서 거기의 다자인이니 콘셉트가 같다고 모사품으로 모는 건 부당하지만 고음부와 저음부 모듈을 분리해 생산하는 컨셉이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보니 카피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윌슨오디오의 와트파피나 그 후속 기종들이 디자인의 원전쯤으로 여겨지는데 이견이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틀란티스'는 멋지다. 150센티의 헌칠한 키에 10인치 우퍼 두 발의 남성적 디자인. 투박한 볼트로 체결된 검은 베플 디자인을 보면 누구의 말처럼 검투사의 형상이 그대로 투영된다. 이는 고스란히 검은색과 은색으로 어우러진 '판테온 mk3' 진공관 앰프와도 컬러톤이 일치하는 것이어서 더욱 맘에 든다.
사실 스피커는 중고를 사야 한다. 앰프나 CDP와는 달리 동작부위가 제한적이라 오래 사용했다고 한들 물리적으로 고장 날 구석이 별로 없다. 또한 제대로 에이징 된 스피커를 만들려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여까지 길들이는데 고생을 해야 하는데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중고의 경우 이미 오히려 앞 주인이 이런 수고를 대신해 준 상태라 에이징을 손쉽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문제는 가격이다. 불과 얼마의 기간만에 신품의 60~70%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어느 정도 연식이 생긴 스피커는 출시가의 50% 근처에 거래되기 마련이다. 이것도 물론 지명도가 있는 스피커의 경우이고 공동구매 수준의 스피커의 경우 장터에서 아예 외면당하는 수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다 보니 고가의 국산 스피커의 신품 구입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 상황인지 고민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따라서 500만 원 이상의 국산 스피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몇 조가 시장에 풀렸는지 모르겠으나 '아틀란티스'의 중고는 찾으래야 찾을 수도 없다.
뭐에 또 미쳤는지, 탄노이 '캔터베리 15'의 몇 안 되는 '단점'에 꽂혀서 며칠을 고민하다 지난 아이어쇼에서 얻어 들은 하이엔드 스피커의 오디오적 쾌감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중에 '아틀란티스'가 있었다.
게다가 국산이라는 가격적 메리트 덕분에 캔터베리의 중고가와 신품 가격이 비슷하다. 무슨 신의 계시인지 몰라도 금잔디음향의 시청실이 집에서 코 앞이라 한 번 청음하고 나서는 더 이상 지름신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ㅠ.ㅠ 벽 뒤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북소리에 버텨낼 오됴파일이 과연 몇이란 말이냐!
하지만 이제 국산의 그것도 고가의 신품 스피커를 들였으니 이제 이 등급의 스피커로는 더 이상 바꿈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그럴 만한 기본기가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결정한 일이다.
사실 한참을 B&W 노틸러스 802를 찾고 있었다.
울리기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장터에 나오기 무섭게 없어지는 스피커계의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가 되겠다. 수려한 B&W 본연의 전형적인 디자인 때문이겠지만 매칭만 잘되면 모니터적 성향의 고른 밸런스에다 충실한 기본기의 음질로 보답해 주는 녀석인데 애석하게도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
그런데 '노틸러스'와 이름도 비슷한 '아틀란티스'가 그 대역을 충분히 해 주리라는데 단 1%의 의심도 없다. 아니 오히려 충분히 능가할 잠재력이 보인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을 공들여 에이징 할 계획이라 섣부른 소리결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룬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말은 해야겠다.
좌 측에 세팅한 아틀란티스의 옆 표면 한쪽 도장의 마감이 다른 곳과 다르게 거칠다.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 보면 다른 쪽들은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반면 한쪽만 거칠게 걸린다. 현재까지 하드웨어적으로 발견한 아틀란티스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그래도 '플래그십'인데 ㅠ.ㅠ
일부러 지적하려 맘먹으면 어느 스피커가 결점이 없겠냐만은 국산 오디오 기기들이 고질적으로 마무리가 여의치 못해서 '감성품질' 만족을 못 시킨다고 여러 번 말한 적 있다. 이제 이런 말들에게서도 자유로운 금잔디음향의 내일을 기대한다. 더 이상 동호인들의 공동제작상 실수 정도의 애교로 넘기기엔 이미 이 바닥에서 담당해줘야 할 금잔디의 몫이 너무 크다.
판테온 앰프며, 아틀란티스 스피커며...... 졸지에 국산 애호가가 되었다. 얼마 후에 에이프릴뮤직에서 최고 사양의 CDP가 나온다던데 혹시 이마저 관심이 생기면 난 정말 나라에서 얼마 안 되는 국산 하이엔드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젠 누가 나 좀 칭찬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ㅋ
※ 추가 - 금잔디음향의 김사장께서 내 블로그를 보셨나 보다. 직접 전화주셔서 거친 도장면을 해결하는 Tip을 주셨는데 깨끗한 A4용지로 거친 면을 문질러 보라는 말씀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시도해 보니 거짓말처럼 매끈해진다. 중간에 팔이 아파서 완벽하게는 못했지만 A4용지가 일종의 뻬빠(샌딩페이퍼)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메이커에서 글을 감시(?)하고 계시니 앞으로 악평하긴 다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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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7.12.
결론부터 말한다. 본문의 글을 쓴 날이후로 오늘까지 저 스피커는 지박령이 되어 집을 한번 옮길 때도 따라 다니며 함께하고 있다. 무려 15년 세월이다.
이런 경우 보통은
1. 지독하게 마음에 들거나,
2. 더 이상 바꿈질을 할 재정적 여력이 없거나,
3. 바꿀 수 없는 상태이거나,
셋 중 하나인 상태일 텐데 위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물론 그 사이 두 번 정도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네트워크를 한번 손 봤고 유닛 중하나를 좀 더 좋은 것으로 알갈이를 했다. 모두 칼라스를 통해 진행했으니 튜닝이라기 보단 정식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하이엔드다운 청량감이 좀 부족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쪽보다는 궤짝의 통울림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큰 단점이 아니다. 그러니 소리로도 어디 하나 탓할 수 없고 디자인도 이 정도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폼도 나고 하니 1번의 지독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안방마님 자격으론 충분하다.
스피커가 오디오판의 메인에 해당이라 전체 예산의 절반은 여기에 투자해야 하니 여기서 더 뭔가를 바꿔 효능감이 있으려면 적지 않은 출혈이 필요하다. 그러니 2번도 맞는 말이고,
국산임에도 가격이 안드로메다라 이걸 제값 받고 팔기도 어렵고 살 사람도 과연 있을지 불투명하니 바꿀 수 없는 상태라 3번도 맞다.
결국 평생 귀속템이 되어 함께하는 중이니 이젠 남의 것 기웃거리기보단 가끔씩 손때를 묻혀가며 정을 담는 수밖에.
다들 이렇게 길들여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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