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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9.8.21.]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 by Erich Kunzel (SACD)

by 오늘의 알라딘 2024. 8. 5.

뭐 오디오 좀 한다 하는 사람이면 하나씩 있을 앨범이라 추천이란 표현은 좀 뭐 하지만, 클래식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학창 시절 강제로(?) 몇 번은 들었을 레퍼토리이니 혹시 클래식 입문자에게 좋을 앨범을 고르거나 자신의 오디오를 평가해 볼 레퍼런스 CD로 추천한다.

미국 스러운 이름은 아니지만  미국인 지휘자 Erich Kunzel이 텔락 레이블을 통해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와 만들어낸 이 앨범은 2001년 SACD버전의 발매 이래 공전의 히트작이자 텔락의 현재가 있게 한 기념비적 앨범이라 할 만하다. 

실제 19세기 프랑스 대포를 사용하여 녹음 한 이 앨범의 경우 이미 78년 LP 원전을 통해서도 시스템을 잡아먹는 '악명'높은 앨범이었다.

대포의 무지막지한 저음을 비닐판에 담다 보니 LP의 골이 깊이뿐 아니라 좌우로도 넓게 골이 패인 형태를 만들게 되었다.  

 

무수한 카트리지가 이 골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튕겨나기 일쑤라 당시 LP 애호가들은 이 황당한 골짜기를 '그랜드 캐년'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이 골을 제대로 통과하고 소리를 내는 시스템이라야 하이엔드 판돌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과연 허언이 아닌듯하다.

그 후로 CD로, 2001년에는 SACD 멀티채널 버전으로 발매되었는데 시스템 잡아먹는 음반의 명성은 이 후로 더 커졌다. 이제 까지는 턴테이블 카트리지 잡아먹는 귀신 정도였는데 이 후로는 스피커 우퍼를 집중적으로 깨뜨렸다.

다이내믹 레이지 폭이 큰 CD와 SACD 탓에 대포 소리가 터지는 최대 음압 상태와 보통의 오케스트라 레벨이 상대적으로 차이가 커서 멋모르고 시원하게 볼륨을 올려 듣던 많은 오됴파일들의 스피커가 대포 소리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ㅠ.ㅠ

그 후로 그 유명한 텔락의 경고문이 등장하게 된다.
"대포 소리가 졸라 크게 녹음되어 있으니 알아서 줄여 들어라 오버~"

요즘도 (특히) 빈티지 스피커에 물렸다가 우퍼가 쏟아져 나왔다는 사람, 세라믹 우퍼가 깨졌다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본다.

뭐 어찌 되었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른 지휘자의 '1812 서곡'에 비해 연주의 질 역시 훌륭하다. 주로 경쾌한 오케스트레이션의 앨범이라 이 여름에 호쾌함을 맛보게 해 줄 대편성 곡으로도 만족스럽다.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서부영화 한 편 보는 느낌 그 이상이다.

팀파니 주자 출신의 지휘자 탓인지 대포 소리를 논외로 하더라도 북소리나 종소리 등 저음역 전반의 소리를 잘 살린 음반이라 스피커의 우퍼 테스트 음반으로 이만한 CD가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아직 준비 안 한 레퍼토리라면 이 앨범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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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8.5.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얼리어답터를 표방하며 살았던 적이 있어다. 그때의 못된 습관 때문인지 남들보다 먼저 하고 더 잘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고 만다 하는 것이 꽤 많아졌다. 특히 대중적으로 남들도 다 한다는 것이 생기면 공연히 그 대열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먼저 보지 않은 영화면 천만 관중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보지 않았다. 미친듯한 열풍이었다는 탕후루 역시 입에도 대지 않은 채 그 유행이 죽었다. 뭐 그런 식이다.

 

유행에 민감한 트민남이 대세라지만 유행을 선도하거나 적어도 선두에 있는 쪽을 좋아했다.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뒤늦게 뛰어들고도 이미 남들이 즐거워하는 그것을 정작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도 좋아한다는 마라탕을 아직 제대로 못 먹는다. 개인적으로 고수나 똠양꿍을 좋아해서 이런 이국적 향신료에 제법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민트를 한 움큼 씹은 것 같은 그 알싸한 마라향이 영 익숙지 않다. 얼리어답터는커녕 촌스런 입맛으로 트렌드는 개나 줘라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알고 보니 세상의 두루두루를 이해하고 선도하는 데는 택도 없는 선택적(?) 얼리어답터였을 뿐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클래식에는 모두가 다 팔로워 일 뿐이다. 지금에 와서 남들이 다 갖고 있는 레퍼토리를 구한들 유행에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클래식이란 이름에 걸맞게 오히려 썩은(?) 명반을 찾는 뒤늦은 행위들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니 15년 전 <오늘의 음반>으로 추천했던 이 앨범이 여전히 유효하고 아직 없는 애호가라면 지금이라도 장만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대포소리 나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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