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에 아틀란티스를 들였으니 정확히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 이제야 아틀란티스의 소리를 평할 수 있겠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3주가 걸렸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그 3주 이후에는 소리결이 더 이상 어떤 '선형적'인 변화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사람이 뭔가를 결심하고 변화를 얻어내는데 '21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병아리 한 마리가 부화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21일이고, 갖난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도록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하는 금일인 '삼칠일'이 바로 그만큼의 시간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어떤 변화가 '단속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고 습관화에 들어섰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아틀란티스 역시 그 21일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주변 시스템이나 케이블과의 낯설음을 피했다 하겠다. 사실 그 사이 눈에 거슬리는 조립상의 편차로 맘 고생도 했고-결국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했다-하루마다 때로는 시간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소리결의 변화에 종잡을 수 없었다. 중역대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거나 총주(Tutti)에서는 저음이 뭉술하게 뭉쳐 들리는 문제로도 고민이 많았다. 녹음 상태를 그대로 들려주는 아틀란티스의 성향을 감안할 때 전적으로 스피커에다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다소 정리가 안된 혼돈의 3주였다. 하지만 지루한 그 시간이 지나고 이제 한 달을 넘긴 지금. 아틀란티스 진면목의 소리가 제법 나온다.
아틀란티스의 미덕은 먼저 칼같은 '정위감'이다.
악기가 소리 나야 할 그 위치, 그 높이에 손으로 짚을 수 있을 정도의 소리가 나와 주는 특기가 있다. 파트별 솔리스트가 나란히 노래할 경우 양 스피커 사이에서 소프라노와 베이스까지 반 보씩을 사이에 두고 음상이 움직이는 네 명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공연장의 S석이 따로 없다. 솔직히 정위감만을 따지자면 공연장의 Sweet Spot은 겨우 몇십 좌석도 안 나올 것이다.
게다가 솔리스트 뒷 편에 위치한 오케스트라는 스피커의 뒷 벽을 뚫고 한 참 뒤에서 넓게 무대를 그려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토우인을 세팅해 주는 등 노력이 좀 필요했다. 스피커와 뒷 벽과의 거리는 상대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지향각이 있는 고음부 모듈의 경우 머리의 상하 각도나 좌우의 각 자체가 정위감과 뒤에 말하려는 밸런스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두 번째 미덕은 대역간 밸런스.
이제껏 사용했던 유럽계 스피커(JM Lab, 트라이앵글, 모니터오디오, 소너스파베르, 탄노이 등)들은 한결같이 특정 대역이 부풀려져 있었다. 특히 고음부가 강조되어 있는 것이 많았다.
그중 고음역이 쏜다는 표현을 많이 듣는 '트라이앵글'의 경우 일정 부분 의도적으로 고음부를 살려 놓고 있다고 생각된다. 바이올린이나 여성 보컬의 찰랑거림을 표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으므로 이를 잘 살릴 경우 또 이만한 스피커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장르에서는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성향으로는 포컬 유닛을 사용하는 JM Lab이 있는데 독특한 색깔-하지만 매력적이다-까지 입혀져 있었다.
이를 보완할 성향의 올라운드적인 스피커로는 '모니터오디오'를 들 수 있었는데 어느 장르에도 모나지 않은 천상 '영국 양반'의 기질이나 거꾸로는 어느 것에도 내세우기 힘든 모호함이 있었다.
'소너스 파베르'의 경우 끝까지 답을 못 찾은 경우였다. 매력적인 디자인 때문에 가급적 계속 가지고 가려고 여러 번 앰프도 바꿔 보고 애를 썼음에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녀석이었다. 이것도 이탈리아의 기질인가? 저음이 제대로 터져나오지 않아 늘 아랫도리가 허전하거나 볼륨을 좀 올리면 거꾸로 부밍으로 골치 아팠던 문제아였다.
그 후 잠시였지만 직전까지 사용했던 '탄노이'의 경우 연륜 가득한 중후함으로 편안한 리스닝 그 것 하나로는 더 이상의 고민을 할 이유가 없는 스피커였다. 이제껏의 스피커들에서는 듣지 못했던 풍성한 저음도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맨 위에서 첫 번째 미덕으로 말한 정위감 부족. 이것이 문제다. 무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틀란티스의 '밸런스'를 이야기 하려다 말이 길었다. 칼라스가 자랑하는 4차 네트워크의 장점이겠지만 결론적으로 어느 음역대가 특출 나게 튀어나오지 않고 고르고 평탄하게 나온다.
중고역이 강조된 예전 스피커에 길들어진 귀로는 고음이 다소 심심하게 들릴 수도, 중역이 다소 적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사용해 보면 다른 스피커들의 그것이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세 번째 미덕은 단단한 저음.
아틀란티스의 10인치 우퍼 두 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음을 듣고 나서야 흔히 말하는 '단단한 저음'이 무엇인지 인지했다. 탄노이 15인지 우퍼의 풍성하기만 한 저음과는 다른 의미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집 전체를 울릴 정도로 파워가 있으면서도 강단있게 통제되는 저음. 중역대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음상을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바로 그 저음이야말로 '단단한 저음'의 제대로 된 정의이다.
음악의 쟝르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위 세 가지 미덕만으로도 아틀란티스는 '소리통'으로서의 몸 값은 다하고 있다.
고음역의 투명함이 다소 부족한 부분은 고음부 모듈의 스피콘 단자에 채용된 케이블을 교체해 보는 등의 노력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소리 이외의 부분에는 '치열한' 되돌아 봄이 필요해 보인다. - 꼭 어떻게든 '마감의 질'을 높여야 한다.
세세한 내용은 글도 다하지 않아도 메이커에서 인식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같은 가격대의 외산 스피커라면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마감의 질'을 언제까지나 "국산이 뭐 이 정도면 되었지"하는 안일함으로 대응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주문은 그냥 사용자 한 사람의 잔소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지속 성장 가능 기업'으로서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로 인식하길 충언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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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8.16.
2009.9.9. 9가 세 개나 붙어 있던 날에 쓴 꽤 긴 글이다.
저 스피커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고-중간에 조금 손을 보긴 했다-여러 번의 위기(?) 가운데 여전히 메인이니 저 날의 느낌과 크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다른 스피커로 바꾸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위에 열거한 장점들을 과연 능가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피커 교환의 엄두를 못 낸다. 오랜 기간 서로에게 길들여진 이유일지도 그가 들려주는 소리가 레퍼런스로 가스라이팅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더 좋은 소리란 것에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더 좋은 걸 좋게 못 느끼는 그런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모국어와 신토불이 음식들이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 같이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다른 스피커로 교환한들 잠시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국적 느낌일 뿐 곧 얼마지 않아 15년간 듣고 살았던 그 스피커를 김치 찾듯 할 것이라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가 되어버렸다.
일본 스타일이긴 한데 '황혼 이혼'이 이제 우리나라도 유행이란다.
대개는 분할재산과 연금이 극대화되는 남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그간 모아두었던 원한(?)을 여자 쪽에서 터뜨려 결행하는 경우다. 아틀란티스와의 15년간의 동거가 어떤 파국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스피커의 수명이 내 남은 여명만큼을 될 것이라 피차 쌓아둔 원한이 없길 바란다. 스피커 용 연금까지는 생각을 못해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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