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거창한 문화생활은 못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위한 투자도 가끔은 필요하다.
코엑스 메가박스에 미리 예약해 놓은 한국 영화 '국가대표'를 관람했다. 잔잔한 웃음거리와 가끔 울컥하는 감동이 적절히 버무려져 '우생순'을 능가하는 수작이다. 스키점프라는 고난도 촬영신도 제대로다. 다만, 러닝타임 두 시간 반에서 오는 다소 '느슨함'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오래간만에 강남으로 넘어간 김에 '풍월당'에 들러 그간 봐둔 CD 몇 덩어리(?)를 구입했다. 사놓고 안 듣게되는 일이 많아 박스세트는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박스로만 두 개다. CD 개수로는 54장이나 된다.ㅠ.ㅠ
DG의 '브람스 전집'과 베토벤 '현악 4중주' 전집.
'대학축전 서곡'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가을에나 잘 어울릴 것 같은 브람스이지만 한꺼번에 그의 곡을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명 연주자들로 가득한 앨범이라 크게 망설임 없이 지를 수 있었다. 수입반에다 46장에 135,000원이면 한 박스 들여놔도 손해 볼일은 아니다.
아울로스에서 출시한 멜로디야 음원의 '베토벤 현악 4중주 전집' 역시 제대로 된 단단한 박스 포장에 8장의 CD세트임에도 1만원대라는 '파격적'인 가격 때문에 집어든 것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들어보니 연주와 녹음 모두 나무랄 때 없다. 한마디로 '대박'
선물로 받은 흑백의 풍월당 기념 머그잔도 마음에 든다. 브람스의 실루엣으로 도안된 이 잔으로 커피를 즐기며 음악을 듣는다면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토요일 한나절에 나가서 적지않은 돈을 썼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소비가 적어도 나에겐 '투자'이기 때문에 마음은 그 이상 풍요롭다.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도 수고했다 칭찬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어때? 한 잔 기울이기 적당한 돈으로 CD한 장 쇼핑해 보는 것은.
* 사족 - 예전 풍월채 자리에 '로젠카발리에'라는 이름의 카페가 새로 생겼다. 커피는 물론이고 스콘이나 머핀, 와인까지 즐길 수 있는 명실공히 진정한 카페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 풍월당의 예전 무료 커피 서비스는 없어졌다. 풍월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CD 판매하랴 커피 서비스하랴 번거롭던 일손을 줄일 수 있어 좋겠다만 오프라인의 비싼 CD가격을 커피 값이려니 하고 웃어넘기던 사람에게는 그나마도 없어진 아쉬움이다. 갑자기 발레파킹으로 낸 2천 원도 아까워지네. 에고 이 어쩔 수 없는 쫌스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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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7.30.
본문의 글 주제는 '문화적' 소비를 즐겼던 하루였던 것 같다. 요즘은 그 문화적 소비의 카테고리가 점점 줄어 안방에서 하는 것으로 전부 변형(?)이 되었다.
코로나가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공연도 영화도 심지어 운동도 집안에서 다 해결한다. 좋은 시스템과 OTT의 활성화 그리고 홈짐이 있어 가능해진 일이다. 그러니 예전보다 뭔가 문화적 소비가 줄었다기보다는 삶의 풍요 덕분에 굳이 밖을 나가지 않아도 구독료 얼마를 통해 모든 것이 구현 가능하단 말이고 적어도 그걸 향유할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게다가 맘에 드는 원두만 있다면 언제든 원하는 맛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 덕에 위 모든 활동의 윤활유를 얹는 것도 거실과 주방 몇 걸음으로 가능하다.
한마디로 기분전환을 위해 굳이 외출을 선택하지 않는 한 나만의 공간에서 기대한 모든 활동이 가능한 지극히 현대적인 삶이다. 그런데 자꾸만 돈을 '더' 들인 문화적 소비를 안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다. 예를 들어 녹화물의 유통이 없어 일회성 공연으로 휘발되어 버리는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것이라든지 OTT로 넘어오길 기다리다 보니 늘 한 박자 늦게 접근하게 되는 영화-범죄도시 4도 최근에 봤다-뭐 그런 문제다. 남보다 한 발자국 정도는 앞서 걸어야 속이 시원한 성격인데 그런 걸 못하는 것에서 오는 갈증 같은 것이다.
결국 읽고 보고 알고 경험한 것들이 많아야 대화의 콘텐츠도 풍성해지는데 몇 개의 핫한 것들을 뒤늦게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소외되거나 듣기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전락이 되어버리는 게 싫은 거다. 이젠 남들 뒤도 좀 따라가고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사람 쪽으로 서있어도 될법한 나이가 되어가는데 성질머리가 안 바뀐다.
하긴 내가 안 바뀌면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차피 그리 만들어 놓을 거라 조바심은 필요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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