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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오늘

[2009.9.8.] 오늘의 책 / 음반 - 하루키 '1Q84',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by 오늘의 알라딘 2024. 8. 13.

'무라카미 하루키'라 하면 일본 현역 작가 중 최고로 치는 사람이다.  좀 아는 척하고 자길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변의 카프카' 같은 하루키의 글에서 한 대목을 따와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수준을 뽐낼 수 있는 벤치마크가 되는 작가이다. 그런 그의 책을 부끄러운 말이지만 처음 접하고 있다. 그것도 내가 고른 것도 아니요, 아내가 읽고 있는 책을 틈틈이 훔쳐 읽고 있는 중이다-사실 소설류를 좀 폄하하는 나쁜 버릇이 있음을 고백한다. 마치 TV 드라마처럼.

선인세 15억 원을 주었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 책. '1Q84'- 독특한 제목이다. 처음엔 지능 지수를 말하는 IQ 84인 줄 알았다.ㅎ 일본어 숫자 9와 Q가 비슷한 음으로 발음이 되는 것에 착안해 시간의 흐름을 혼돈해하는 주인공이 'Question'의 의미로 1984를 대신해 사용한 말이다.  동명의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처럼 미모의 젊은 살인 청부업자 '아오마메(靑豆)'와 수학 학원 강사이자 문예지의 1차 원고 선정작업을 하고 있는 '덴고'의 이야기가 각 장을 달리하며 '병렬 구조'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아마 장 마다 주인공의 시점을 바꾸어 가며 진행하면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최근 문단의 유행인가 보다. 황석영의 그것처럼 주인공이 너무 많아 읽기에 거북스러울 정도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직 1권의 3분의 1밖에 읽지 못했다. 그러니 이야기의 흐름을 소개할 자신도 없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의 줄거리를 미리 흘려 재미를 반감시킬 이유도 없겠다. 한마디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과 소재들이 등장한다. 여성 살인 청부업자의 '살인'이라는 내용도 그러하지만 페이지마다 꽤나 자극적이거나 성적인 코드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독자가 어떤 것에 열광하고 흥미로워하는지를 꿰고 있는 듯하다. 정황을 소개하는 글이 제법 많지만 짧은 호흡의 글에다 맛깔난 번역 덕택에 글을 읽는 재미가 더할 수 없이 쏠쏠하다. 특히 번역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일본어와 한국어 모두에 틀림없이 능통한 유능한 번역가의 작품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는 하루키. 그의 말이 허투루가 아니다. 꼭 한 번 읽어 볼만한 소설로 추천한다.

 

하루키는 그의 작업을 '육체노동'이라 했다. 그럴 체력을 갖기 위해 운동을, 그것도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마라톤을 한다고 했다. 그 고통의 결과물인 이 책 때문에 하루키의 다른 글들도 찾아 읽고 싶게 만들고, 이런 글을 써보고 싶게도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그의 책 1장에 살인청부업자 아오마메가 작업현장(?)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택시 안에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죠시 셀이 클리블랜드 오스스트라와 연주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바로 그것이다. 

체코출신의 야나체크의 다른 앨범이 집에 있던가? 싶을 정도로 생경한 작곡가의 음악이 책에 소개된다. 사실 책의 주인공 역시 이런 낯선 음악을 듣고 단박에 알아차린 본인 스스로를 이상히 생각하며 시간의 미궁에 빠져든다는 점에서 익숙한 곡은 '절대' 아니라고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책에 이 곡이 소개된 덕에 일본 소니뮤직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발매 후 9년 동안 겨우 2천 장이 팔렸는데, '1Q84'가 출간된 뒤 일주일 만에 주문이 9천 장까지 쇄도했다니 이 책의 파급효과란!  명장 죠시 셀이 1965년에 녹음한 연주를 90년에 디지털 리마스터링해 발매한 이 앨범은 음질이 깨끗하여 감상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다만, 전형적인 클래식 곡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관악이 주도하는 곡 전반의 기묘한 부조화-불협-가 주는 불쾌감(?)이 조금은 낯설 수 있겠다. 1악장 알레그레토의 브라스와 팀파니로 시작하는 '신포니에타'는 일본 어느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어도 그럴듯한 행진곡 풍의 호방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2악장 안단테-알레그레토에서는 주제를 현이 받아 신비롭고 긴장감 넘치는 흐름을 이어가면서 간간히 익살스러운 소형 관악기들이 곡에 재미를 더한다. 4악장이 모두 끝나도 책의 내용처럼 객석의 박수 소리가 들리거나 하진 않는다. 실황 앨범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의 내용과 함께 진지하게 들어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이어서 함께 추천한다. 바로 오늘 '1Q84'의 2권이 출시되었다. 퇴근하면서 이 책도 구입해 들어가야겠다. 

 

※ 추가(2009.9.12 아침) - 655페이지의 1권을 모두 읽었다. 열하루가 걸린 셈. 틈틈이 읽느라 진도가 빠르진 못했으나 모처럼 빠져들어 읽어 내려간 책이다. 2권은 600페이지가 조금 안되니 보다 빨리 마칠 수 있으리라. 이제야 주인공들의 연결고리가 조금씩 보인다.

 

※ 추가(2009.9.19 아침) - 2권까지 모두 읽었다. 지방 출장을 다녀온 간 3일을 빼고 나면 4일 동안-주로 저녁시간-에 2권을 해치웠다. 1권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가는 이야기의 구조가 이젠 익숙한 것이어서 읽는 속도를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의 비약이 심한 데다 연계고리의 얼개가 쉽사리 노출된 것이어서 전개상의 긴박보다는 선정적 내용의 '함의'에 작가가 기댄 바가 크다. 환타스틱 소재의 탓인지 현대 유물적 시각의 비판에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론'이라는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모호함과 허무를 갖게 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리는 '읽는 재미' 이상의 무엇을 찾아야 할까?  책 속에 사용된 '상실'되었다는 말이 이런 느낌을 의미하는 것일까. 200Q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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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그 후로 세가 좀 덜하지만 그해 하루키의 위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대형서점마다 산처럼 '1Q84'를 쌓아놓고 판매했고 그렇게 팔려나갔다. 성경책 세 권의 분량이었지만 술술 잘 넘어간 책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소설을 마뜩잖아했던 내가 그것도 일본 소설을 두루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에는 몰랐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유명 작가들이 서재에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키가 책 읽는 방향을 틀었던 것처럼 우연한 기회가 원인이 되어 미친 듯 가속도가 붙어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게 되는 일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 기름을 끼얹은 이유도 있지만 보다 많은 흥미를 찾아서 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다들 부지런히 달려가게 만든다.

 

그러니 찰나의 시간들이 주는 이유들에 가끔은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온 우주가 내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굳이 반복되는 우연만 필연일 필요는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그래서 허투루가 아니다. 무수한 가능성의 확률 중에 내게 찾아온 그 하나의 경우의 수가 생각하기엔 결국 운명일 수 있다.

 

그러니 공평한듯 주어진 시간 속에 어느 것을 선택하고 무엇을 수행하고 누구를 만나게 되는 것.

누군가의 미세조정 안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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