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남자의 오늘

[2009.9.8.] 때론 '정면 돌파'하기

by 오늘의 알라딘 2024. 8. 14.

어제 병원에 갔다.

내가 병원에 가는 경우는 일 년에 두세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것도 그중 한 번은 회사 지원의 건강검진을 위해 가는 경우라 어지간하면 병원 신세를 안 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병원 환자복 따위는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병원을 스스로 찾았으니 몸의 상태를 꽤나 이상히 느꼈다고 봐야 한다.

처음엔 그저 귀에 물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전날 저녁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침에 눈 뜨고 부랴부랴 서둘러 출근하려고 나오는데 왼쪽 귀가 멍하다. 수영장에서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의 멍한 느낌. 바로 그랬다. '제길 샤워하다 물이 들어갔나 보다'

보통은 얼마 후에 바로 물이 빠지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점점 심해진다. 귀가 멍하다는 느낌을 넘어 왼쪽 머리가 다 멍해지는 느낌. 그리고 유난히 중저음의 소리가 듣기 거북할 정도로 크게 들린다. 마치 옆을 쿵쾅거리며 뛰어가고 있는 마루 바닥에 귀를 바로 대고 있는 느낌이다.

사무실 건너 종로 피아노 길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결혼이나 했을까 싶을 젊은 의사다. 귀 속을 들여다보았다. 고막 이상 무. 약간 물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으나 자세히 보니 아니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그네들 말로 '임피던스' 체크를 하잔다. 임피던스? 오됴쟁이에게 익숙한 말이다. 아무튼 이것도 정상.

'돌발성 난청'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러니 이제는 청력 테스트를 해 보잔다. 오됴파일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지만 청력은 보통 사람들보다 오히려 좋단다. 이것도 통과.

결론적으로 귀에는 문제가 없단다. 다행인 듯싶지만 오히려 더 불안하다. 그럼 이 머릿속이 붕붕 울리는 서브우퍼의 느낌과 왼쪽 스피커 볼륨만을 올려놓은 이 느낌을 도대체 뭐란 말인가?

몇 가지 과잉 진료(?) 후에 젊은 의사 양반은 오히려 편도가 약간  부었다며, 뭔 약의 처방을 준다. 한마디로 온 길에 이거라도 먹어보고 이틀 후에 보자는 거다.


약을 받아 사무실에서 보니 '인습성'이 강하다는 주의 사항이 적혀있는 항생제-내가 제일 싫어하는-가 잔뜩 포함된  약이다.  이비인후과 약들은 죄다 이렇다. 한 포 먹어보니 오히려 더 어지럽고 뱃속도 불편해진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젊은 의사 양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더 이상 이 약은 먹지 않기로 한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도 머릿속이 울려서 좋아하는 음악도 듣기 어려웠다. 늘 저녁 내내 즐기던 클래식 CD를 올릴 꿈도 못 꾸었고 TV 소리만으로도 왼쪽 귀(머리)가 울린다. 특히 저음. 윗 층에서 책상 끄는 소리 등이 몹시도 자극적으로 들린다. 뭔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귀에 물이 들어가 생긴 증세는 아니라는 확신만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딸아이가 영어 학원을 가야 해서 그 시간을 이용해 헬스클럽을 갈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고민.

솔직히 하루 종일 귀가 울리는 고통가운데 보냈기 때문에 심신이 피로했기 때문이다.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 이 지긋지긋한 소음과 격리되어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게다가 가뜩이나 귀가 울려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헬스클럽에 가겠다고 우긴다면 아내가 마뜩해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오늘도 운동을 쉬면 주말 내내 를 포함해 너무 오랫동안 중량 운동을 쉰 것이 된다. 게다가 오늘도 건너뛴다면 뭔가를 계획대로 못했을 때 스스로에게 느끼는 '짜증' 역시 이겨내기 힘든 것이다.

지금은 무엇이 '질병'이고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던가? 이럴 땐 아예 뭔가에 -그것도 육체적으로 -집중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다.

꽤 열심히 운동을 했다.

보통 1시간 정도를 체육관에서 보내는 것이 보통인데 한 시간 반을 그리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한쪽이 더 아프면 덜 아픈 쪽은 아무래도 신경이 적게 쓰이는 법이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즐기는(?) 동안에는 귀의 울림 따위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땀을 흠뻑 내고 서늘해진 저녁 공기를 맡으며 밖으로 나온다. 귀의 울리고 머리가 멍한 것이 한결 덜하다. 아니 거의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개운하다. '브라보~' 이런 것도 운동의 효과이던가?



아침이다.

늘 일찍부터 서두르는 출근길이라 잠이 덜 깨고 머리가 조금 무거운 것을 빼면 보통의 아침과 다름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와 같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붕붕거리는 울림으로 고통뿐이었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끔하다.

때로는 숨거나 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몰두할 수 있는 것으로 '정면 돌파'하는 것이 해답일 수 있겠다.

조금은 심리적인 '이명'의 증세를 육체적 트레이닝으로 이겨내는 것이 지금 내가 발견해 낸 최선의 '정면 돌파'이다.


[글 더하기] 
오늘은 2024.8.14. 말복
 
그 후로 비슷한 경험을 한번 더 했다.
 
운동으로 이명 비슷한 증세를 이겨낸 것과는 반대로 이번엔 헬스장에서 머신운동을 하다 힘조절을 잘못했는지 운동 때문에 어깨를 다쳤던 적이 있다. 어깨를 돌리질 못해 혼자서는 셔츠도 입고벗지를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깨에 내시경 같은 것을 넣어 촬영까지 하는 이런저런 진료 후에 나온 진단명은 '회전근개 파열'. 
 
몇 번 못 맞는다는 흰색 주사와 무려 한 달 치의 약을 처방받아 왔는데 그게 비닐봉지로 하나 가득이다. 뭔가 자신 없어하는 의사의 얼굴과 약 먹다 중간에 아프면 다시 와라 수준의 응대와 오버랩되면서 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먹었지만 영 차도가 없고 시간이 약이다라는 뉘앙스의 의사 반응을 보고 그냥 약을 내다 버렸다.
 
아프고 힘들지만 견디면서 자연치유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실제 이런 근골격계 질병이라는 게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염증관리하는 수준의 치료가 많다 보니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고 버티는 중에 서서히 통증은 완화되고 어깨의 가동범위가 돌아오는데 3개월 정도가 걸렸다. 불편했지만 무식하게 정면 돌파를 한 또 한 번의 경험이 그렇게 생겼다.
 
안다. 무식한 짓일 수도 있다는 거. 죽을병이 아니란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만 의외로 병원을 찾는 게 위약효과뿐일 수 있다. 피하기보단 이런저런 환경이 노출되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내성을 갖는 게 오래 버티는 비법이기도 해서 너무 자기 방어적으로만 살 필요가 없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오늘은 말복.
입추가 지났지만 한낮의 기온은 40도에 육박하며 매일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 몇 년, 차로 출퇴근하며 밖에 나갈 일이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턱없이 더위에 약해진 나를 발견한다. 피해다니는 사이에 그렇게 정면돌파 할 거리가 또 하나 생긴 거다.
 
오늘 맞설 것은 또 뭐가 있을지?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