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에 어찌하다 보니 '일요일 밤'에는 제일 적은 수면을 취하거나 반대로 가장 많은 잠을 잔다.
월요일 출근의 부담 때문에 휴일의 저녁을 최대한 즐기고자 하는 경우에는 제일 적은 수면을 취하게 되고, 같은 이유로 그나마 좋은 컨디션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도 한다.
어제는 후자였다. 일찍부터 피곤한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하긴 했는데 갑자기 너무 일찍 누워도 숙면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5~6시간 남짓의 평소 수면시간을 갑자기 늘렸으니 몸도 놀랬겠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이러다 보면 대개는 엉뚱하고 기상천외한-하지만 깨고 나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꿈을 꾸게 된다. 기승전결도 없고 등장인물의 일관성도 없으며 시대의 선후관계도 엉망인, 한마디로 '스토리' 부재의 꿈에 시달리다 일어나게 된다. 특히 얼마 전 하루키의 '1Q84'를 읽고 난 후 이런 꿈을 꾸는 날이 잦아졌다. 그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을 헤매는 주인공들의 일상이 매일 저녁 내 꿈에서 펼쳐진다.
어제의 꿈 역시 그 스토리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난다. 늘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꿈속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고-분명히-그 냄새를 가지고 꿈속에서 아내와 아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꿈을 '흑백'으로 꾸었네 '칼라'로 꾸었네 하는 말이 있었지만 여기에 추가하여 '후각적'으로도 꿀 수 있다는 분명한 체험을 했다.
물론 잠결에 깨어 있는 사람들의 먹고 마시는 냄새를 맡은 것은 분명 아니다. '꿈속'의 '꿈속'의 생활에서 '꿈속'의 냄새를 경험한 것. 물론 과거에도 그런 경험이 있었겠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근의 기억으로선 어제가 유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꿈속에서는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말은 틀린 말일 것이다. 그 건 깨어났을 때의 감각일 뿐이다. 1Q84년과 1984년이 같지만 다른 세상인 것처럼, 꿈속의 1Q84년에서는 역시 아프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냄새가 난다. 추억의 냄새도.
그저 1984년에서는 모른 척 살아갈 뿐.
[글 더하기]
오늘은 2024.9.2.
아닌 척해봐도 역시 꿈이란 건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일상을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남들도 아는 나의 일상 이외에도 늘 생각하고 읽고 보고 느끼고 상상한 모든 것을 데이터 베이스로 해서 나름의 조미료를 더 해 한 편의 꿈으로 등장한다.
깨어보면 다 기억나지도 않지만 조각으로 남은 꿈의 흔적이 때로는 황당하지만 알고 보면 개인의 잠재된 모든 뇌활동이 마더소스가 되어 여기저기 버무려져 있는 것이라 결국 본인의 숨은 자아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잠에서 깨어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샤워하고 옷 입고 아내가 준비해 준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커피 한 잔을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리고 비몽사몽 운전을 해 사무실에 지금 앉아있다. 한마디로 전날 꿈의 기운이 살아있는 상태로 하루를 연다. 어제도 역시 온갖 꿈을 꾸었다. 이 역시 거의 소실되었지만 어느 항구 대합실에서 배를 기다리는 내용이어서 몇 주전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외도 유람선을 탄 기억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몰타편의 외국인들이 울릉도를 거쳐 독도에 가는 것을 본 것이 짬뽕이 되어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면 꿈속의 그것이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은 상태인 것인지 파란 약으로 구현된 세상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구분의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은 중간 어디쯤일지도.
무엇이 사실인지 모르고 세상은 달라도 결국 나는 하나다. 그저 나로 살아간다는 데 의미를 두는 수밖에.
그나저나 벌서 9월이다. 나로 살아갈 유통기간이 또 한 달 소멸했다.
❤️ 수익을 위한 글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공감하트/구독하시면 그저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남자의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9.22.] 포화된 시장 탈출구? 중년을 위한 MP3 (6) | 2024.09.04 |
---|---|
[2009.9.22.]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좀 많이 샀다 (10) | 2024.09.03 |
[2009.9.15.] 현대 바람빼기 작전인가? 도요타 캠리 전격 등장 (5) | 2024.08.29 |
[2009.9.11.] 좀 유치하지만, 애 썼네~ 우리회사 새로운 광고 (11) | 2024.08.28 |
[2009.9.11.] '결혼 전' 과 '결혼 후' (2) | 20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