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보따리 구입해 들어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에 한 권을 하루 만에 읽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50페이지 정도의 두껍지 않은 책이었다.
물론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의 그것이라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것이겠지만 지난 197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의 그것은 두 번째 것 이후가 갖지 못하는 각별함이 있을 테니.
이 책을 '1973년 핀볼', '양을 쫓는 모험'과 함께 왜 '쥐 3부작'이라 부르는지 몰랐는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에서 '쥐'라는 별명의 친구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탓인 것을 읽고 난 후에야 알았다.
스포일러는 안 좋은 것이니 줄거리를 옮길 생각은 없다. 그저 그의 첫 소설을 읽고 '이런 식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미 30년 전의 집필 방식을 이제야 신선하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진부'한 것이지만.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겠지만 하루키의 서문과 '나'가 풀어가는 소설의 본문 간에 벽이 없는 구조. 어느 때는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긴 설명이 더해지다가도 정작 독자가 궁금해할 대목에서는 스스로의 상상 속에 맡겨버리는 무책임할 정도로의 생략의 공존. 18일간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딱히 줄거리라 할만한 '스토리'라인의 부재.」
이런 식으로도 소설을 쓸 수가 있구나! '하트필드'라는 가상의 작가의 이야기를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묘사한 것으로 독자를 교묘히 속임으로써 이 책이 겨우 '소설'임을 알게 해 줄 뿐이다.
주인공의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는 '나'가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20대의 마지막 해를 살고 있는 그 나이대 젊은이의 '흔한' 혼돈과 방황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지만 '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흔하지 않다 함은 하루키의 특징인 뭔가 생경한 소재들-일본식인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손가락이 네 개인 여자' 같은 인물-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뭔가 이유가 없어 보이는 낯선 소재와 곁 이야기로 살을 붙여 가면서 읽는 이 스스로 긴장하도록 만드는 묘한 구성이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딴 세상의 이야기로 흘러가버린다. 결국 '주' 스토리와 '부' 스토리를 냉정하게 구별해 가야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해서 30년의 간극이 있는 하루키의 첫 번째 소설과 이 시간 현재의 마지막 소설-1Q84-을 동시대에 읽었다.
두 소설이 서로 다른 세대에 집필되고 다른 번역가에 의해서 한글화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작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반복'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복선일 수도 있겠지. 한 소설에 사용된 소재와 인물이 그다음 소설에 재차 차용되면서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 '미야자키 히야오'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Q.E.D(quod erat demonstrandum ; 라틴어=which was to be demonstrated)와 같은 수학 용어의 사용, 동물학? 전공의 이야기, 중간중간 낯선 고전의 인용을 통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 여성의 가슴에 대한 '과도한' 집착. 모두 하루키를 대표하는 코드 같은 것이리라.
하나하나 상징으로 조작된 비밀문서와 같은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그가 책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에 수미쌍관으로 밝혀 놓은 것처럼 나도 뭔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지금처럼.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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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9.10.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그-하루키-의 버릇처럼 긴 세월을 하루에 몇 줄이라도 쓰고 있다. 주말처럼 키보드 앞의 고민을 그냥 넘기는 날엔 공연히 불안감이 들 정도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의식처럼, 직장에 출근했음의 흔적으로 모니터 벽에 하나의 줄을 더 그어 넣는다.
월급쟁이로 30년을 살았으니 늘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지만 정작 나의 생산은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몇 줄 글로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될 이유도 개연성도 없이 늘 생산만 한다는 점이지만.
일기장이 늘 매번 누구에게 읽힐 이유는 없다. 매일 쓰는 글이란 뜻의 '일기'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의 글이란 뜻이 되어버렸지만 읽을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글이란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저 불현듯 쓰고 싶어진 글을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가 인연의 독자가 되어 1979년의 하루키에게 느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지.
이렇게도 글을 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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