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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하다 가랑이 찢기/오디오 음악감상

[2009.10.21] 노느니 꼼지락거리기(4)-오디오 케이블은 일방통행이다

by 오늘의 알라딘 2024. 10. 16.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동안 비교적 '케이블'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케이블 간의 분명한 음질적-정확히는 음향적-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뿐 아니라 실제 그 차이를 여러 번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격만큼의 차이를 의미하진 않으며 어떤 향상이 때로는 특정 장르에 국한된 이야기일 경우가 많았고 기기 전체의 성능을 좌우할 만큼 결정적이라는 것에는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남들은 제일 중요하고 차이를 크게 느낀다고 하는 '파워 케이블'의 경우에는 거의 케이블 간 구별을 못해내는 '막귀'가 한몫을 하고 있다. 오히려 소스 쪽 '인터 케이블'에만 조금의 민감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사용하는 케이블들도 앰프를 들이면서 함께 추천되어 따라온 제조사 번들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물론 제조사에선 나름의 자부심으로 앰프와 매칭해서 판매하고 있는 내 기준으론 적지 않은 금액의 케이블이다.

문제의 인터 케이블. '실버 텐션 Silver Tention'. 25만원
'실버 스톰Silver Storm'이라는 멋진 이름의 스피커 케이블. 2.5m페어 75만원

스피커 케이블과 인터 케이블 모두 은선에 백금을 도금한 심선을 여러겹으로 채용한 미 군용 특주품(?)으로 기본적으로 성향이 동일하다. 은선 특유의 뻗침성과 해상력이 좋고 배경을 넓히는 무대감과 정위감으로 상대적으로 이들 덕목에 취약한 진공관 앰프에는 제격의 케이블이다. 사실 스피커 케이블과 인터 케이블을 동일 소재로 갈 경우 지나치게 심심해지는 경우가 많아 둘 중 하나 정도는 '동선'으로 가는 것이 양념으로 사용하는 케이블 본연의 목적에도 부합할 텐데 어쩌다 보니 그냥 세트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Tone의 경우 케이블 소재에 비해 단자처리나 제작에 대단히 무신경한 편이라 외관은 아주 볼품없는 것. 매달린 단자들 역시 몇 천 원짜리의 '싸구리'에다가 수축 튜브의 마감 처리 역시도 그다지 세련되지 못했다. 오늘 말하려고 하는 '방향성' 표시가 없는 건 뭐 당연할 정도다.

그중 그나마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터 케이블'을 보자.

 

이미 몇 번의 블로깅을 통해 이 케이블을 흉을 본 적이 있다. 무개념스러운 단자의 선택과 터미네이션에도 그다지 호감이 없었지만 음질적으로도 정이 안 가는 케이블이었다. 저음은 뚝 잘려나가고 중역대는 메마르며 고역대는 너무 날카롭다. 살집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는 느낌이다. 아주 좋은 CDP는 아니지만 <마란츠 11s1>은 중급기 이상의 실력 있는 소스인데 이 케이블만 연결하면  부드러운 잔향 가득한 마란츠의 특색은 오간 데가 없어진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연결과 해체를 여러 날, 여러 번 반복해 보기도 하고 단자를 닦아 보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 컨디션 때문에 그리 들린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케이블을 나 혼자만 쓰는 게 아닐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왜 나 혼자일까?  분당의 황금 귀 이*훈님 역시 별 불평이 없는 케이블인데 막귀인 나만 이토록 혼자 예민해하는 이유는? 게다가 몇 번 Tone 시청실에서 시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같은 '인터 케이블'에 '마란츠 CDP(15s)'였는데 집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기 때문이다. 탄노이 빈티지를 울리는데 전혀 날이 서 있거나 살집이 빠져있다는 생각이 없었다. 왜/일/까?

"Serendipity!" - 유레카!

고민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고민의 해결 방법이 열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케이블의 '방향성'이다. 

케이블 원선을 제조하는 단계에서 뽑아내는 방향을 어느 한쪽으로 사출 흐름이 결정되면 케이블 단면의 물성 역시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되어 신호 흐름이 특정 방향으로 보다 원활하게 되는 이른바 '방향성'이 생긴다는 논리이다. 겨우 1m 남짓의 길이를 흐르는 전기 신호에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만은 적어도 특정 방향으로 오랜 시간 에이징되어 길이 난 것이 바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방향성'이다.

대부분의 메이커는 케이블상에 화살표를 마킹해서 신호 흐름을 지정하고 있으며 화살표가 없더라도 케이블 표면에 인쇄된 글씨의 흐름대로 신호가 흐르도록 하는 것이 통용되는 '방향성'의 정석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Tone 케이블의 경우 싸구려 단자에다 수축 튜브를 볼품없이 감아놓은 형태라 '화살표'는 물론이고 표면에 인쇄된 글씨 따위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라, 그저 정사장님이 집에 방문해서 체결해 놓으신 그 상태의 방향을 '정답'으로 보고 이제껏 유지해 온 것이었다. 그 사이 여러 번 체결과 해체를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도 그 '방향'만큼은 한 번도 바꿔볼 생각이 없었다. 단자를 좀 고급품으로 바꿔봐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드디어 떠오른 '영감'에 의지해 케이블 방향을 반대로 바꿨다. 이런! 이런! 분명히 몇 달을 폄하해 가며 불평했던 그때 그 케이블이 아니다. 스피커 케이블 쪽이 그러하듯 시원시원한 중고역에 적당히 기름기가 있는 중역대와  적절히 통제된 저음이 아주 제대로다! 밸런스감이 탁월하다.

이 좋은 걸 두고 왜 이리 맘고생을 했을까? 얼른 네임펜을 들고 모처럼 찾아낸 '방향'대로 수축튜브 위에 표시를 해 놓았다. 이제 다시는 방향을 잃을 일이 없도록. 이제 정말 단자만 좋은 놈으로 바꿔주면 앞으로 인터케이블 걱정은 안 해도 좋을 만큼 성향이 마음에 든다.

역시 가끔 노느니 꼼지락거려야 답이 나온다.

혹시 사용 중인 케이블이 마음에 안 들어 내치려 할 때,  맨 마지막으로 미친척하고 방향을 바꾸어 한 번 들어보고 결정하길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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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10.16.

 

뭔가 생각하지 못한 발견을 한 뒤라 꽤나 장문의 글을 기분 좋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케이블이지만 난생처음 케이블의 '방향성'이란 걸 실제 체험한 경험이라 오래 기억된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 실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전기나 바람, 공기의 존재 같이 내가 못 느낀다고 없다고 까지 매도할 필요는 없는 그런 것들이 어디든 존재한다. 가청주파수, 가시광선처럼 인간 혹은 나의 능력 밖에 존재하는 것들은 인정해 사용하는 용어들도 많다. 가끔은 신의 존재를 같은 비유로 사용한다.

 

오디오 역시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이제는 음원부터 스피커로 나오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창작이 그러하듯 없는 것-정확히는 없어 보이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과정을 즐기는 일이 되었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훨씬 많은 것, 오감으론 도저히 이해 못 할 미지의 영역이 허다한 것. 그래서 오늘을 사는 게 기적이고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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